“열차에 타서 정말 힘들면 무조건 식당 칸으로 가면 됩니다요! 그리고 일단 식사 주문을 하시고 오래 오래 버티면 됩니다요. 그리고도 계속 눈치를 주면 그 자리를 사시면 됩니다요. 아마 밥값에 얼마를 더 보태면 자리를 팔 겁니다요.”
박 선생님이 우리와 헤어지면서 마지막으로 건넨 힌트였다. 가장 싼 사격에 탈 수 있는 딱딱한 좌석표인 잉쭤에 머무르다, 정 힘이 들면 해결해보라며 알려준 ‘중국 3등 열차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열차표를 살 때만 해도 ‘까짓 것. 조금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가면 되지. 그게 뭐가 힘들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열차가 출발하며 우리가 찾아간 잉쭤 객실. 다들 무슨 피란민들이라도 되는지 좌석 위에도 좌석 사이사이에도 온갖 보따리와 짐짝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열차가 흔들리는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여기저기서 그들만의 저녁식사를 시작한다.
흙을 채 털어내지도 않은 굵은 파뿌리를 손으로 두어 번 툭툭 쳐서 흙을 떨어낸다. 그리곤 아삭 아삭 몇 번을 씹더니, 사발면 국물을 후루룩 후루룩 요란하게도 드신다. 그리고 건너편에선 중국식 빈대떡을 가방에서 주섬주섬 꺼낸다. 역시나 집 앞 텃밭에서 갓 파낸 것 같은 굵은 대파 양쪽을 손으로 비틀어 뜯어낸 후 빈대떡 위에 펼친다. 그리곤 빈대떡을 돌돌 만 다음 한 입 베어 먹는다. 기차 안인지, 시장골목인지 모를 정도이다.
십년만의 상봉이라도 한 듯 열차 안은 제각각 자기 일행들과 모여앉아 쉴새 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낯익은 풍경 속에서 우리는 이방인의 상념에 젖어 한참 서 있었다. 우리가 예매한 좌석은 이미 알 수 없는 만담꾼들의 놀이터가 된 지 오래이다.
몇 시간이 지났다. 더 이상 이렇게 서서 가기에는 무리. 박 선생님께서 알려준 비법을 동원해보기로 했다. 발 디딜 틈 없는 3등 객실, 잉쭤 칸을 다섯 개 지나니 식당 칸이 있었다. 우리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흥정할 것도 없이 바로 식당 좌석 하나를 사겠다고 했다. 이런 일이 종종 생기는지, 안내원은 흔쾌히 허락하였다. 우리는 한 사람당 50위안(7천원)에 좌석을 사고 가장 싼 저녁 음식을 주문했다.
“아. 저 아저씨 뭐야. 제복은 입어 가지구. 되게 깡패같이 보이네.”
“진짜 저 뚱땡이같이 생긴 놈 끈질기게 붙어 있구만!”
일행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식당좌석을 구매하고 저녁식사까지 주문했는데, 우리가 돈을 주고 산 좌석에 아까부터 제복을 입은 일행들이 식사를 해야 한다며 앉는다. 그리곤 식사가 끝난 한참 후에까지도 자리를 비울 생각을 안 하는 것이었다.
식당 종업원에게 따져 물으니, 열차 공안이라며 이제 곧 자리를 비울 테니 기다려달라고만 한다. 공안이란 말에 우리는 약간 긴장했다. 혹시나 우리말을 알아들을지도 모르니 불평도 하지 말아야 한다며 우리는 눈빛으로만 잔뜩 불만을 표출했다. 일행 모두가 다 자리를 떴는데도 유독 한 명만이 남아서 담배를 연신 피워대고 신문을 보며 거드름을 피운다.
“제가 짐작컨대, 저 아저씨 아마 우리 골탕 먹이려고 하려는 게 분명해요. 돈으로 좌석 사는 놈들 한번 고생해봐라. 뭐 이런 뜻이 아닐까요?”
나는 일행에게 이렇게 말을 건넨 후, 무슨 묘안이 없겠는지 일행을 추궁하기 시작했다. 중국 공안들은 잘못 건들기만 하면 무조건 말도 안되는 꼬투리를 잡고 벌금을 부과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접했기에 일행들은 매우 조심하게 행동하자고 했다. 그러는 사이 일행 중 둘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는 옆 식탁에 양해를 구해 잠시 의자에 앉은 다음 억지로 새우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래 좋다. 벌금 부과하라면 하라지. 그래도 명색이 한 나라의 공직자인데 그렇게 막무가내로 나갈 리가 있겠어?”
나는 장난기와 객기가 적당히 발동했다. 뭐 이국땅에 와서 불미스런 사건 하나 만들고 가도 나중에 다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공안에게 다가갔다. 그 공안은 잠시 나를 흘낏 쳐다보더니 다시 무척 건방진 자세로 담배를 물고는 신문을 보기 시작했다.
“여기요. 칭따오 피져우 하나 주세요.”
나는 종업원에게 맥주 한 병을 시켰다. 그리곤 맥주컵 세 개를 주문한 후 아직 잠이 들지 않은 일행 한 명을 테이블로 불렀다. 이윽고 맥주가 도착했다. 나는 얼른 맥주병을 따고 맥주를 따랐다. 그가 아무런 반응이 없이 신문을 읽고 있자 나는 테이블을 톡톡 두 번을 쳤다. 공안이 쳐다보자 나는 얼른 맥주 한 잔을 건넸다. 공안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약간 민망한 듯 맥주를 받았다. 나는 나머지 두 잔에 맥주를 채운 후에 공안을 보며 조금 높은 소리로 이야기했다.
“치얼스!”
공안이 어이가 없는지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원곡동 중국인 노동자들이 커베이(컵째로 나오는 술) 술을 마시며 늘 외치는 건배 제의, ‘치얼스!’ 그 한마디에 공안은 박장대소를 하면서 피고 있던 담배를 얼른 잿털이에 털어냈다. 이제 좀 뭔가 되겠구나 싶어서 나는 잠을 자고 있던 일행 한 명을 깨우고 통역을 부탁했다. 공안은 겨우 맥주 한 잔의 뇌물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대화는 무려 심양에 도착하기까지 다섯 시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공안은 업무를 완전히 접은 듯했다. 맥주를 한잔 받아 마시고는, 근무중이라 맥주는 더 마시면 안 된다고 하면서 종업원에게 계속해서 안주를 주문했다. 그의 한 마디에 새로운 안주가 끊임없이 나오기 시작했다. 땅콩을 우리 일행에게 먹기 좋게 까주기 시작했다. 땅콩이 떨어질라치면 왜 서비스가 이렇게 오늘따라 더디냐며 손님들 대접 좀 제대로 못하겠느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선양시로 가는 내내 현대자동차 이야기(일행 중 한 명이 현대 직원이었다), 디지털 카메라 이야기, 대장금 이야기 등을 나누었다. 공안의 부인이 대장금 프로에 열광하는 한류팬이어서 한국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꽤 많았다.
열차가 선양역으로 다가갈 무렵, 공안이 우리에게 제안했다. 공안은 장춘에서 상하이까지 운행하는 열차에서 근무하는데 살고 있는 곳은 장춘시이다. 우리의 여정이 연길에까지 가는 것이라 가는 도중에 심양에 꼭 들르라 했다. 특별히 ‘개고기’를 사주겠다고 했다. 일행 모두 다 개고기는 먹지 않는다고 그렇게 말렸는데도, 그는 장춘에 개고기가 아주 유명하니 꼭 개고기를 사주겠다고 한다. 한국친구들을 사귀게 되어 너무 기쁘다며, 꼭 장춘에서 개고기를 먹고가라고 강권했다. 우리는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이렇게 부르면서 헤어졌다.
“잘 가세요. 쉬거(허 형)”
“장춘에서 봅시다. 처띠(차 동생).”
낯선 땅에서 새롭게 사귄, 우리 일행의 두 번째 친구다.
난 수첩을 꺼내들고 허형의 전화번호 밑에 이렇게 적었다.
'태초부터 이방인이란 없었던 거다!'
2007.11.15 11:05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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