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묘지좌측에 보이는 분묘가 바로 공자님의 묘지. 오른 쪽에는 공자 아들의 묘이다. 많은 관광객들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생각했던 것보다 엄숙하지 않은 묘지 앞의 분위기.
차승만
흥분한 나는 박 선생님에게 내가 얼마나 감격하고 있는지 충분히 설명하고 싶었지만 그럴수가 없었다.
"차 국장님. 저는 공묘보다는 종묘가 낫습니다요!"
"예? 아......"
그랬다. 외항선을 타고 세계 구석구석을 누비다 처음으로 찾아간 할아버지의 고향. 부산항에서 그가 도주했던 것은 비단 부산의 야경이 아름다워서만은 아니었으리라. 그를 울컥하게 만든 것은 깊은 밤 부산항에서 불었던 비린내 가득한 갯바람. 그 속에 실려 온 고향길의 유혹. 아버지에게 귀에 닳도록 들었던 할아버지의 고향 부산. 그래서 그는 아직까지 한국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박 선생님. 한국이 박 선생님을 추방했는데도 또 가시고 싶으세요? 동포를 버린 고국에요?"
"물론입니다요. 저는 중국이 정말 싫습니다요. 정도 안 가고요 별로 살고 싶지가 않습니다요."
소학교 시절 자신을 미워한 한족 담임 선생님에 대한 원한이 남아서일까? 아니면 그의 피에서 절규하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환상 때문일까?
"박 선생님. 박 선생님은 한국에 가서도 일 안할 거잖아요. 또 우리 사무실에 와서 봉사하면서 세월 보내시게요?"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재중동포들이 그토록 한국에 오고 싶어 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한국이란 나라가 단지 돈을 벌기 쉬운 나라라서 그런 거 아닌가?'라고 혼자 생각하며 얄궂게 물었다.
"돈 벌어서 뭐합니까요? 저는 돌볼 애도 없고, 가족도 없습니다요. 저는 무조건 그냥 한국에 가고 싶습니다요. 한국! 공기도 좋고, 사람도 좋고, 그냥 다, 다 좋습니다요!"
박 선생님은 한국이 무엇이 그리 좋기만 한지, 한국 예찬론을 끊임없이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동안 외국인노동자들과 함께 문화체험으로 한국의 고궁 등 유명한 관광지에 가게 되면 유독 중국인들에서만 듣는 이야기가 있다. 경복궁에 가게 되면 자금성에 비해 너무 유치하다며 비아냥거리지를 않나, 남한산성에 소풍을 가면 만리장성하고 비교하며 지금 장난감 가게에 데리고 왔냐고 한다. 경주에 가서 불국사 다보탑을 보여주면, 시안을 들먹이며 아직도 발굴중인 병마용 이야기를 역시나 빼먹지 않고 거론한다. 한국은 작아서 유치하대나. 설악산을 가든, 내장산을 가든 언제나 '규모'의 절대적 기준만을 유일한 가치로 내세운다.
재중동포들이라고 해서 크게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한국을 은근히 무시하는 중국인 혹은 재중동포들의 대부분이 사실은 만리장성이나, 자금성, 시안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 난 일체 이들의 말에 대꾸를 하지 않기로 했다.
"박 선생님. 이왕 중국에 머무르게 되셨으니, 일단은 이곳 생활에 한번 정을 붙여보세요. 이제 여자 친구도 생기셨잖아요. 이제라도 늦지 않았어요. 저분하고 결혼을 하세요. 그리고 가정을 꾸리고 단란하게 사실 생각을 해보세요. 나이 드시면 더 외로워질 텐데요."
"아 예. 알겠습니다요. 저 걱정은 하지 말고요. 차 국장님이나 빨리 장가갈 생각이나 하시면 좋겠습니다요."
"......"
30대 후반이 되도록 고향을 떠나본 적 없는, 박 선생님의 여자 친구 양씨가 우리의 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부지런히 구경을 하고 다닌다. 베이징에서 온 관광객, 심천에서 온 관광객. 그는 관광지보다도 관광지에 온 다른 지방의 중국인들이 더 궁금한 모양이다. 하루 온종일 지나가는 여행객들을 붙잡고서는, 지방이 어딘지 직업이 뭔지 이런 질문을 귀찮도록 하고 다닌다. 밭에 나가서 일을 하지 않고 이렇게 여행을 다니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꽤나 신기한 모양이다.
결혼하고 얼마 못 되어 이혼하신 박 선생님. 낳아놓은 자식도 없다. 외항선에 몸을 던져서라도 중국 땅에 발을 딛고 싶지 않으셨던 것일까? 30대와 40대를 그렇게 방랑하며 보낸 박 선생님. 이따금씩 여자 친구의 순진한 행동을 보며 웃음을 보이며 걸어가는 박선생님의 뒷모습이 더욱 외로워보였다.
내 발걸음이 점점 느려진다. 방랑끼 가득한 나. 나의 미래가 갑자기 나를 주춤하게 한다. 나도 저렇게 늙어갈까? 집도 없다. 자식도 없다. 가족도 없다. 그리고 모아둔 돈도 한 푼 없다.
늘 지금 여기를 만족하지 못하고, 피안의 세계를 갈구하며 어딘가로 떠나야만 하는 집시 같은 나날. 나의 훗날도 이럴까?
길가에 주저앉았다. 노트를 꺼내들었다. 며칠전 끄적거린 낙서가 내 가슴에 박힌다. '가로등은 멀리서 보면 아름답다. 그러나 가까이 가면 죽어버린 날파리 떼만 가득하다.' 내가 동경하는 삶이 가로등과 같은 일상이 되지 않기를 갈구했는데 그걸 어찌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여행을 가기 전 친구가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너는 방랑을 너무 좋아해서, 아마 객사할 거야!"
나는 친구의 이 말에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그러나 난 결국 이렇게 결론을 맺기로 했다.
'그래 좋아. 난 객사할 거야. 바그다드 까페처럼, 어느 황량한 모래사막. 나를 위해 준비해놓은 고풍스런 까페에서 마지막 남은 원두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모래바람이 무성할 때 즈음 식어가는 커피잔과 함께 그렇게 우아하게 나는 객사할 거야.'
시간이 한참을 흘렀다. 스산한 바람이 잿빛 기와의 먼지를 머금고 부서지고 있다.
"차 국장님. 거기서 뭐해요. 빨리 와요!"
"아. 네. 다리가 좀 아파서 쉬느라고요."
나는 다시 일어서서 박 선생님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한 마디를 건넨다.
"박 선생님. 그래도 저 여자친구와 빨리 이번 달 내로 결혼해요! 우아하게 말이죠! 아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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