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태종 2년에 제작된 지도로서 현존하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지도이다. 국내에는 인촌 기념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일본 류꼬꾸대학 소장본이 있다. 빨간색은 조선의 왕도 한양 규모의 대도시를 표시한 것으로 당시의 조선과 명나라의 역학관계를 엿볼 수 있다. 하단에는 지도 제작당시 태종 조에서 예문관대제학을 지낸 권근의 발문이 있다.
이정근
이튿날, 충녕의 세자 책봉에 대한 고명을 받으러 연경으로 떠났던 사은사 원민생이 명나라 예부(禮部)의 자문(咨文)을 받아가지고 돌아왔다.
"명나라 사신 육선재(陸善財)가 이미 요동에 도착하였습니다."
세자 책봉에 대한 황제의 인준을 받았다는 기쁨도 잠시, 조정에는 비상이 걸렸다. 세자가 즉위 하고자 하니 윤허해 달라는 주문사(奏聞使)를 보내지도 않았는데 명나라 사신이 온다는 것이다. 명나라에서는 아직 태종이 위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초특급 비상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 대책회의가 열렸다.
"갑자기 전위하였으니 명나라에서 어떻게 생각할까요."
세종이 영의정 한상경과 우의정 이원에게 물었으나 뾰쪽한 대책이 없었다. 병석에 누워 입궁하지 못한 좌의정 박은에게 지신사 하연을 보내 의견을 구했으나 역시 대안을 내지 못했다. 다급해진 세종이 원로대신과 육조 판서를 이끌고 상왕전을 찾았다. 긴급구수회의가 열렸다.
"부왕께서 병환이 있어 세자가 임시로 국사를 맡아 보시게 되었다 하고 세자께서 출영하시는 것이 좋을까 합니다."
남재, 정탁, 유창이 머리를 맞대고 도출해낸 의견을 내놓았다.
"부왕께서 황제의 칙명을 받지 않으시면 이는 예의가 아니옵니다. 부왕께서 왕위를 물려주신 일을 숨기시고 국왕으로서 칙사를 맞이하시는 것이 가할 듯하옵니다."
성석린이 경륜에서 우러나오는 지혜라고 내놓은 제안이다.
"주상께서는 익선관을 쓰지 마시옵고 세자로서 칙명을 맞이하셨다가 사신이 돌아간 후에 전위를 주청(奏請)하시는 것이 옳을 줄로 아옵니다."
기발한 발상이라는 듯이 안경공이 제시한 의견이다. 모두가 고육지책이다. 약소국이 대국을 섬긴다는 것이 이토록 어렵다.
잔머리 술수 가지고는 안 된다, 정면 돌파하라"새 국왕이 즉위하고 이미 교서를 반포하였으니 사신이 의주에 도착하면 어찌 그 소문을 모르겠느냐? 사실을 숨기는 것은 옳지 않다." - <세종실록>태종이 원로대신들의 의견을 물리쳤다. 잠시 숙고하던 태종이 다시 입을 열었다.
"'병환이 때 없이 발작하기 때문에 세자로 하여금 임시 권도로 집무를 대행시키기는 하였으나 지금은 병환이 조금 차도가 있어 병을 무릅쓰고 칙령을 맞이하려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좋겠다."
정면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경륜이 부족하고 나이 어린 세종을 앞세워 일을 그르치느니 자신이 직접 전면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대책을 마련한 태종은 이종무에게 선온(宣醞)을 가지고 의주로 급히 떠나라 명했다. 명나라 사신이 국경을 넘는 순간부터 극진히 예우하여 혼을 빼놓겠다는 복안이다. 그 이면에는 사신을 밀착 호위하여 백성들과의 접촉을 차단하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