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조선시대 사용했던 패.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정근
태종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군권에 이상기류가 감지되었다. 일찍이 ‘군권은 직접 청단하겠다’고 천명했건만 군권의 총사령탑 병조의 흐름이 심상치 않았다. 태종은 군권에 균열이 생기면 세종을 지키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태조의 건국 위업마저 와해된다고 믿고 있었다. 자신이 죽을 때까지 틀어쥐고 왕권의 초석을 깔아야 한다는 것이 신념이었다. 이러한 태종의 소망에 불길한 징조가 포착된 것이다. 태종이 강상인을 불렀다.
“상아패와 오매패는 장차 어디에 쓰려고 한 것인가.”병조참판 강상인이 세종에게 패((牌) 더 만들자고 주청했다. 영문을 모르는 세종은 병조에서 필요한 패이려니 생각하고 상서원에 명하여 상아원패(象牙圓牌) 12개와 오매패(烏梅牌) 30개를 더 만들게 하였다. 어제 하명했는데 당일에 태종의 귀에 들어간 것이다.
오매패(烏梅牌)는 임금이 대군이나 의정대신·삼군대장·병조판서를 비밀히 부를 때 사용하는 명소부(命召符)다. 국가 위기관리망의 핵심 징표다. 패를 소지한 자의 통행을 제지하면 어명으로 처단한다. 야간통행금지도 없다. 오매부(烏梅符)라고 부르기도 하는 오매패는 조선팔도에 오직 태종 혼자만 가지고 있다. 군권의 상징이다.
“이것으로 대신을 부르는 데 쓰나이다.”
노기를 애써 감추며 잠자코 듣고 있던 태종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상아패와 오매패를 꺼내어 강상인에게 주었다.
“여기서는 소용이 없으니 모두 본궁으로 가져가라.”
태종의 속내를 헤아리지 못한 강상인이 곧 이를 받들고 주상전으로 가지고 가 세종에게 바쳤다.
“이것은 무엇에 쓰는 것이냐.”
“이것으로 밖에 나가 있는 장수를 부르는 데 쓰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두어서는 안 된다.”
세종의 용안이 새파랗게 변했다. 경기(驚氣)가 날 정도다. 오매패는 세종에게 금지된 부적과도 같은 존재였다. 만져서는 안 될 양날의 칼이었다. 호랑이 같은 부왕의 불호령이 금방 떨어질 것만 같았다. 세종은 강상인으로 하여금 곧바로 가지고 가서 상왕께 도로 바치도록 했다.
패(牌)를 싸가지고 창덕궁으로 뛰어가는 강상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세종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그려졌다. 잠저시절부터 부왕을 20년 이상 모신 강상인이 아버지의 시험에 든 것이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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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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