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암동엔 개가 많다. 한 때 골목엔 어디서나 개가 많았다.
김대홍
몇 발자국만 오르면 이렇게 큰 나무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큰 은행나무가 나타난다. 주위는 모두 공터이고, 공터 끝에 있는 기와집이 무계정사(武溪精舍, 서울시 유형문화재 22호)다.
무계정사란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1418-1453)이 살던 별장으로,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무릉도원을 찾아서 지은 곳이다. 1452년 단종 즉위 후 무계정사에서 군사훈련을 하기도 했는데, 당시 사람들이 흥룡지지(興龍之地)라 말하면서 역모의 땅으로 간주했다.
안평대군은 자신의 친형인 수양대군(세조, 1417-1468)에 맞서다 패한 뒤, 사약을 마시고 죽었다. 패한 자의 집터라서 그런가, 무계정사는 쓸쓸하기 그지없다. 대문은 허술한 철문이고, 마당은 무릎까지 자란 풀이 덮고 있다. 안평대군은 무릉도원이 이곳이라면서 터를 잡았다지만, 지금 이곳에서 낙원의 흔적을 찾기란 힘들다.
무계정사 입구쪽엔 <B사감과 러브레터> <운수 좋은 날>과 같은 작품을 남긴 현진건의 집터 표지석이 있다. 집은 온데간데없이 표지석만 남아 있어 쓸쓸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무계정사를 나와 다시 오르막을 타면 오래지 않아 반계 윤웅렬 별서(서울시 유형문화재 12호)가 나온다. 어느 곳엔 1800년대 말에 지어졌다고 나오지만, 이 곳 안내판엔 1930년대 지어졌다고 돼 있다. 아무튼 조선 후기 한옥 형태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