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홍구 교수는 '재심특별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과거 국가폭력에 희생당한 피해자들이 좀더 쉽고 빠르게 명예회복 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옛날에 이런 사건이 있었지'하고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장윤선
한홍구 교수는 '재심특별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과거 국가폭력에 희생당한 피해자들이 좀더 쉽고 빠르게 명예회복 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옛날에 이런 사건이 있었지'하고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미 법률적으로 혹독한 사건을 겪었지만 여전히 간첩의 멍에를 쓰고 살고 계십니다. 명예회복의 완결을 위해서는 재심이 필요해요. 잘 아시는 것처럼 사법부에서 재심은 엄격하고 까다롭습니다. 물론 사법부에서 많이 노력하겠지만 훨씬 전향적인 조치가 필요해요."
법 위에 정보기관이 존재해왔던 시절, 국가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범죄적 양상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게 한홍구 교수의 생각이다.
특히 안기부의 입김에 따라 판결해왔던 사법부는 이제라도 '법과 양심에 따라' 제대로 된 '재심' 판결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기본적인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섣불리 '화해'를 언급하는 게 과연 '인간에 대한 예의'겠냐고 반문했다.
"송씨 일가 간첩사건을 예로 들게요. 송기복씨 입장에서 보자면 친가와 외가가 이 사건으로 쑥대밭이 됐죠. 특히 이 사건이 '아무개는 부는데 너는 왜 안 불어?'식 수사였기 때문에 친척간에 맺힌 게 많아요. '너 때문에 내가 안기부로 끌려갔다'는 생각 때문이죠.
이번에 저희가 조사하면서 만난 분들 가운데 25년 전 공판장에서 헤어지고 처음 만나는 분들도 있었어요. 형제끼리도 간첩얘기는 안 하고 평생 살아온 거예요. 피해자 간에도 '화해'가 이렇게 어려운데, 가해자와 피해자간의 화해가 쉽게 될까요?"
때린 사람이 맞은 사람에게 찾아와 용서를 구하면 화해지만, 때렸다고 고백도 안하는데 화해할 수 있겠냐는 판단이다. 중앙정보부와 안전기획부, 그리고 국가정보원으로 이어져오는 정보기관이 '기관 차원'의 사죄와 반성, 고백을 한 것은 맞지만, 직접 고문 등 가혹행위를 한 가해자의 양심고백이 없었다는 점은 이번 과거청산에서 매우 아쉬운 점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따라서 기관이 고백한 것은 장한 일이니 앞으로 기관이 잘 하면 된다고 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피해자들의 의견을 존중해서 시민사회가 방안을 내 분명하게 명예회복 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게 한홍구 교수의 견해다.
"그저 몇 가지 진실만 규명했을 뿐... '과거 청산' 아니다""아직도 이런 시각이 존재하죠. '고문은 했지만 간첩은 맞다'. 우리 국민 가운데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 꽤 될 걸요? 국정원 내부에도 당연히 있겠지요. 국정원이 민주인사 마인드를 가져라! 이렇게는 말 못하는 거예요.
그렇지만, 다시는 이런 나쁜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사명을 갖는 건 가능한 일이죠. 현대사에서 가장 부끄러운 치부라고 판단되는 과거사를 털고 가는 건 역사발전에서 매우 중요한 일 같아요. 이 활동은 그 출발에 불과하지요."
한 교수는 이번에 발표된 보고서를 위해 50일간 밤샘작업을 했고, 응급실로 실려가기도 했으며, 모두 2000매의 원고를 쏟아냈다. 한 시사주간지에 연재했던 '역사이야기'를 매일 한편씩 쓴 셈이다.
"요즘 누가 어찌 지내냐고 인사하면 장난삼아 (손을 머리에 붙이며) '공익!' 이래요. 3년이잖아요. 군대 두 번 갔다가 소집해제되었다는 뜻이에요. 밀린 일들이 많아요. 학자들이나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과거청산하자고 악악대긴 했지만 기관 안에 위원회를 만들어 활동할 생각은 못 했어요. 이건 '노무현 아이디어'야.
노 대통령이 진보진영과 척을 졌고 배신도 많이 했지만. 이라크파병·양극화·비정규직·한미FTA 평가는 달리 해야 하지만. 그리고 과거청산 작업이 여러 면에서 미진하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과거청산은 노무현정부가 평가받을만한 일이에요.
이제 국정원 진실위를 비롯해 국방부와 경찰의 과거사위원회가 활동을 종료하게 됩니다. 그러나 과거청산은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지요. 전에는 진상이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피해자들의 주장에 근거해 과거청산을 요구한 것이라면, 이제는 국가폭력 가해자의 한 축인 국가기관이 고백을 한 상태에서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을 논의해 가야합니다."
말을 쏟아내던 그가 잠시 쉬었다가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붙였다.
"정말 꼭 했어야 하는데, 다루지 못한 사건 피해자들께 죄송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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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의 진실규명, '축복받은 간첩'은 건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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