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변호사를 희망제작소 사무실에서 만났다
오마이뉴스 남소연
지난 7월 중순 그와 한 호텔방에서 하룻밤을 함께 보낸 적이 있다. 피스&그린보트(환경재단 주최)를 함께 타기 위해 도쿄에서 하루 머물 때였다. 그때 나는 박원순 변호사의 진면목 중 하나를 재확인했다. 그는 나보다 더 한 기자였다. 나는 피곤에 지쳐 모처럼의 휴식을 즐기는데, 박 변호사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노트북을 꺼내 하룻동안 ‘취재’한 것을 꼼꼼히 정리했다.
그의 정리가 끝나는 것을 기다리다가, 평소 궁금했던 것을 물어봤다.
“지금 희망제작소에서 희망을 제작하고 계시는데, 이번 대선에서 변호사님이 뭐 좀 하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똑같은 질문을 지난 주말 안국동의 희망제작소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을 때 던졌다. 이날 한 시간여 계속된 인터뷰에서 그가 했던 말을 요약하면 이렇다.
“대통령이 아니라도 나는 할 일이 너무 많다. 대선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대선 후에도 얼마든지 할 일이 많다. 왜 대선 때에만 노사모 같은 것이 생기나. 왜 대선이 되어서야 문국현 지지 모임이 생기나.” 그는 대선에 들떠 있는 사람들과 사뭇 달랐다. 그의 희망 제작 방식은, 그의 오랜 시민운동 동료인 문국현과도 달랐고, 요즘 인터넷 공간을 달구고 있는, 전율과 감동을 느낀다는 문국현 지지자들의 방식과도 달랐다. 일희일비 하지 말자는 거였다.
"박원순 대안론 나왔을 때 당혹스러웠다"
박원순 변호사와 마주한 것은 지난 토요일(9월 1일) 오전 10시였다. 보통사람들은 주말 그 시간에 한 주간의 피로를 풀겠지만, 그는 그럴만한 짬이 없다. 이날 오후엔 강원도로 지역투어(지역 시민운동가와의 대화)를 떠날 거라면서, 그 준비에 바빴다.
그의 수첩을 구경해봤더니 정말 빼곡하다. 오전 7시부터 밤 늦게까지. 그는 “거의 일주일 내내 조찬 약속이 있다”고 했다. “점심, 저녁이 다 차니까 아침 먹으러 가고 심지어는 심야 미팅도 한다”고 했다. 참여연대(1995-2002 사무처장)를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시민단체로 성공시키고, 아름다운 가게, 아름다운 재단(2002년부터 상임이사)을 통해 우리사회의 기부문화를 만들어낸 그가 지난 1년 5개월은 희망제작소 일에 전념하고 있다. 그는 “점점 더 바빠지는 것 같다”고 웃음을 지었다.
- 2007 대선 판이 벌어지고 있는데요, 이 시기에 박원순 변호사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개인 차원이든, 희망제작소 차원이든 말이죠.“평범한 시민이라도 대선에 관심 없는 사람은 없겠죠. 향후 5년간의 대한민국 호를 이끌 사람에 대해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겠죠.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 희망제작소가 공식적인 차원에서 일을 할 만큼 아직 충분한 준비가 안돼 있다고 생각해요. 개별 정책에 대한 제안을 세미나 등의 형태로 할 수는 있겠지만. 어떤 통합적 측면에서 대선에 개입하는 것은 이번에는 조금 무리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박 변호사는 이 말을 덧붙였다.
“더군다나 내가 후보로 나올지도 모른다고 거론된 적이 있었기에 잘못하면 오해 받을 수도 있고…. ”
- 작년에 희망제작소를 창립할 때는 대선 등 선거에서 희망제작소가 공약을 만들어 특정 후보에게 공개적으로 돈을 받고 팔겠다고 한 것 같은데. “맞아요. 사실 어떤 후보의 공약을 만들어 준다면 우리가 아주 기가 막히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창의적 발상, 아이디어가 있으니까. 뭐 중요한 공약 열 개라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하면 돈도 한 10억씩 받고. 문제는 특정 후보한테 팔아야 되는데 요즘 같아선 그렇게 되면 특정 후보의 캠프에 들어가는 것으로 비칠 수 있으니까….”
몸조심이랄까? 본인이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희망제작소는 이번 대선에서 “일반적 차원에서 접근을 하고, 특정 후보와 관련 있는 일을 하기에는 힘들 것 같다”고 했다.
- 특정 후보와 관련되는 것이 부담스러우면 희망제작소가 만든 공약을 오픈 마켓에 내다 놓고 누구든 사가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요?“그것도 재미있겠네요.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경천동지할 뭐가 많아야 하는데…. 이번 대선은 그냥 조용히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뭐 앞으로 또 있으니까.”
희망제작소는 사회를 바꾸는 아이디어를 시민들로부터 제안받는 사회창안 운동 등 다양한 일을 해오고 있다. 지하철 문화 바꾸기, 간판 문화 바꾸기, 제2인생 문화 바꾸기, 재해 대처 방식 바꾸기….
희망제작소가 해온 일들은 비판에 그치지 않고 대안이 있다. 중년의 퇴직자들에게 제2의 인생을 살게 해주겠다는 해피시니어 운동은 치밀한 사전사후 프로그램이 있다. 그런데 이런 많은 ‘아기자기한’ 대안을 만들어오고 있는 희망제작소이건만 이번 대선 판에 직접 뛰어들어 ‘이렇게 우리 사회를 확 바꿔봅시다’라고 할만한 ‘큰 희망’은 아직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실 1년 5개월이면 아직 그런 기대를 하는 것은 이를 것이다. 하지만 박원순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은 그의 희망제작소 생활 1년 5개월이 아닌, 1995년 참여연대를 만든 이후의 12년간을 볼 것이다. 그동안 그가 품어왔을 대한민국 개조 프로그램의 본격 개봉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올 대선의 해 초입부터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가 “어쩌시렵니까”하고 물었을 것이다. 나도 그중에 한 명이지만.
"대선판에 왜 참여하지 않느냐는 '협박'도 받았다"- 올 봄에 언론에 ‘박원순대안론’이 몇차례 거론됐는데 그때 어떤 느낌을 받았나요.
박변호사는 “허허”하며 웃었다.
“아니 전혀 생각을 했던 바가 없기 때문에 일단 뭐 당혹스럽죠. 저는 뭐든지 일을 하면 완결해내는 습성이 있어요. 저질러 놓고 그만두지 못하죠. 희망제작소에서 이제 막 일을 시작했는데….”
- 지인들한테 소셜 디자이너로서 시민운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가 디자인도 중요한 게 아니냐, 한번 대선판에 나서라, 이런 이야기 많이 들었을텐데. “그런 얘기 있었죠. 많이 듣고.”
- 그런 사람들이 왜 그런 제안을 한 것 같아요?“글쎄요. 그래서 저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는 했어요. 아니 뭐 내가 나가야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은 협박하다시피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당신이 일을 이렇게 저질러놓고 왜 책임을 안 지냐' 이런 식의 얘기였어요. 따지고 보면 저도 한국사회의 주요한 변화를 여러 측면에서 이끌긴 했죠. 그래서 지속성 측면에서 기대를 갖고 나에게 그런 말을 한 거 같아요.
그런데 요즘 한국사회를 변화시키는 게 꼭 대통령이 주도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대통령 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사람 혼자 하는 것은 아니니까. 우리 한국사회는 (국가가 하지 못하는) 비어 있는 곳들이 참 많아요. 아직 여기서 제가 할 일이 많은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