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중궁궐 같은 중국의 자금성. 환관(한국의 내시)들은 이곳에서 평생 황제만 바라보면서 살 수밖에 없었다.
김종성
"그렇지만, 내시들이 군주를 독살하고 부정부패를 일삼은 사례가 많지 않으냐?"고 질문할지 모른다. 그것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내시들이 군주를 독살한 경우에도 그것은 또 다른 '차기 군주'와의 모의 하에 그렇게 한 것이지, 아무런 배경도 없이 그런 짓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그런 경우에도 그들은 기본적으로 '왕의 남자'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귀족이나 사대부 편을 든다면, 그 순간부터 그들은 존재의 의의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존재의의는 귀족이나 사대부와의 대결에서 군주를 보조하는 데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시들이 뇌물을 받고 매관매직을 하는 등 부정부패를 일삼은 사례에 대해서도 좀 더 숙고가 필요하다. 내시가 판치고 다니는 세상은 그만큼 귀족 혹은 사대부가 기죽어 사는 세상이다. 그리고 귀족이나 사대부가 기죽은 시대는 바로 군주의 권력이 왕성한 시기다.
오스만제국의 사례에서 언급한 것처럼, 술탄의 권력이 전성기일 때에 궁정노예들이 전면에 등장했다. 이것은 자신의 수하들을 권력 전면에 내세워도 좋을 만큼 군주의 권력이 강화되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한국이나 중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내시들이 판치고 다닌다는 것은 그 뒤에 군주의 비호가 있으며, 또 그렇게 해도 될 만큼 군주권력이 강화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군주와 귀족(혹은 사대부)의 대결에서 군주권이 상대적으로 강화되어 군주를 견제할 사회세력이 약화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군주와 귀족이 팽팽하게 대립할 때에, 군주는 백성을 자기편으로 만들려 한다. 하지만, 귀족에 비해 압도적 우위를 점한 상태에서는 굳이 백성에게 기대려 하지 않는다. 그런 경우에 군주는 자신의 비대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불법자금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군주가 직접 나서서 부정한 돈을 거둘 수 없으니, 그 수하들인 내시가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시들이 부정부패를 일삼고 권력을 전횡하는 상황은, 실제로는 군주가 그 배후에 있었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아무 배경도 없는 내시들이 군주와 귀족 양편을 동시에 억압하고 그 같은 부정부패를 일삼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어느 한 쪽이 내시를 비호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귀족들은 내시를 비호하지 않으니, 군주가 그 배후에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내시들이 부정부패를 저질렀다고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문자 그대로 믿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귀족 관료나 사대부 관료와 달리 내시들은 본래 재산을 축적할 이유가 별로 없는 사람들이다. 인간의 욕심은 대개 성욕이나 가족 때문에 생기는 것인데, 그런 것이 없는 사람들이 불법 재물을 얻기 위해 정치적 모험을 감행했으리라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물론 내시들마다 개인차는 있었겠지만, 그들은 기본적으로 큰 욕심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군주가 그들을 기용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치적으로 볼 때에 내시의 부정부패는 분명 왕의 부정부패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에는 내시의 부정부패라고 기록되어 있다면 그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될 수 있을 것이다.
오스만제국의 술탄들이 궁정노예를 대재상으로 내세운 이유 중의 한 가지는,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신의 정치적 책임을 노예에게 떠넘기기 위해서다. 대통령제 국가인 한국에서 총리라는 '이상한 제도'를 두고 있는 데에도 유사한 이유가 작용하고 있다. 헌법학자들의 지적처럼, 총리를 '방탄용'으로 쓰려는 목적이 부분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내시들이 직접 나서서 불법 재물을 모으는 것은, 대개의 경우 군주의 비호나 지시 하에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군주가 비밀 정치자금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내시들이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경우 내시들이 주범이라고 역사에 쓰여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보스를 위해 정치자금을 수집한 보스들이 검사 앞에서 자신의 단독 범행이라고 우기는 경우와 별로 다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내시들에게 불리한 기록이 역사에 남는 것은 그들의 신체조건으로 볼 때에도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다. 역사에 긍정적으로 기술되려면, 후손들의 지위가 든든해야 한다. 군주나 귀족들에게는 그런 후손들이 있다.
하지만, 내시들에게는 양자 외에는 후손들이 없다. 훗날 자기 조상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역사 기록을 정정해달라고 요구할 후손들이 그들에게는 없는 것이다. 내시가 역사에서 부정적 이미지로 남는 데에는 이처럼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또한 내시를 비호해줄 지식인 같은 사회세력이 없기 때문에 역사에는 그들에게 불리한 기록이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어쩌면 역설적으로 그들의 청렴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해서 자기편을 만들지 않았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해서 내시들은 정말로 불쌍한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남자 구실을 못해서가 아니다. 평생 군주에게 충성하면서도 때로는 군주의 잘못까지 대신 뒤집어쓰고 그것도 모자라서 두고두고 역사에서 '나쁜 놈'으로 기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내시는 본질적으로 군주의 정치권력에 보탬이 되는 존재였는데도 오늘날에는 왕을 위협하던 존재로까지 묘사되고 있으니, 그들은 어디 가서 이 억울함을 호소해야 할까? 그들의 후손을 남길 단서는 '항아리'에 들어가고 없으니, 어느 누가 나서서 그들의 한을 풀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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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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