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막내 운용, 운학, 운기씨.송기영
강원도 춘천에 '연극'이라면 죽고 못 사는 삼형제가 있다. 황운기(雲基)·운학(雲鶴)·운용(雲聳)씨가 그 주인공들이다. 한 집안의 삼형제가 모두 연극의 길을 걷기까지,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사연들을 찾아가 들어보았다.
1989년, 어머니가 갑작스레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맏형 운기씨가 16살 되던 해였다. 하지만,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버지마저 그 해 겨울, 심장마비로 어머니를 따라갔다.
졸지에 고아 아닌 고아가 되어 버린 삼형제.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철없이 뛰어놀던 둘째와 막내를 보며 운기씨는 유서를 썼다. 언제 날을 택할까만 고민하며 꿈도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를 이어가던 운기씨에게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연극 표 한 장을 내밀었다.
"힘든 것 안다. 기분전환도 할 겸 한번 보고 오거라."
연극이라고는 성탄절에 교회에서 하는 것을 본 게 전부였던 운기씨. '이 마당에 웬 연극?'이냐며 마지못해 보러 간 연극이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말았다.
자살할 마당에 웬 연극?
<우린 나발을 불었다>. 연극의 제목이다.
"배우들의 대사와 몸짓을 보며 온 몸이 전율했어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 것 같았어요."
연극이 끝났는데도 다리가 떨려 자리에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겨우 몸을 일으켜 극장에 붙어 있는 연극 포스터 한 장을 떼서 가슴에 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 이거야. 바로 이 길이야."
교회에서 직접 대본을 써가며 연극을 시작했다. 그리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제대로 된 연극무대에 도전했다. 직장을 다니며 극단을 알아보다 한 생활정보지에서 단원모집 공고를 보고 무작정 응모했다. 극단 굴레.
"제 친정 같은 곳이었지요.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수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간단한 오디션만 거치고 운기씨는 굴레의 단원이 되었다. 연출이 꿈이었지만 먼저 배우로 시작했다.
운기씨가 연극에 빠지자 동생들도 자연스럽게 연극을 접하게 되었다.
"현실에선 가난한데 배우가 되면 부자도 될 수 있고 높은 사람도 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어요."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얼마 안 돼, 막내 운용씨도 극단 굴레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학교를 다니며 연극을 하는 것이 벅찼지만 며칠 밤을 새도 힘들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렇게 형제들은 끝을 알 수 없는 연극의 마력에 깊이 빠져 들고 있었다.
삼형제 연극에 빠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