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와조각들. 홍양리5층석탑 주위엔 이런 기와 파편들이 여럿 보이며 자기편과 토기편도 더러 보인다. 이는 예전에 절터가 있었음을 보여주나, 현재 절터의 정확한 위치는 확인되지 않았다.송영대
위의 사진은 그러한 기와파편들을 모아놓은 모습이다. 왼쪽 위와 오른쪽 아래의 유물은 어골문이라는 문양을 타날 한 것이다. 타날이라는 것은 좀 더 내구성을 강하게 하기 위하여 무엇인가로 두드린 것으로서, 문양이 있는 것으로 타날 할 경우 미관상에도 괜찮고, 그냥 한 것보다 더 낫기 때문이다. 오른쪽 위와 왼쪽 아래는 격자문으로, 격자문은 쉽게 말해서 바둑판을 연상하면 된다. 네모난 게 촘촘히 있는 게 격자문으로서 이보다 좀 더 규모가 크고 마름모꼴로 되어 있는 것을 사격자문이라고 한다.
이곳은 안양골로서 부여 문화원에서 나온 <부여의 구비설화 2>라는 책에 보면 여기에 얽힌 전설이 하나 있다. 본래는 홍산동헌의 자리가 현재 있는 곳이 아닌, 바로 이곳에 세우려고 하였다고 한다. 지리적으로도 홍산골보다 이 안양골이 더 나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다가 동헌을 세우려고 하자(전설에선 도읍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고을터라고 보는 게 합당하다) 갑자기 산이 솟아올랐다고 한다. 그 산이 바로 용심산이라는 산으로서, 이 용심산 아래에는 탑이 하나 있다고 하는데, 그게 바로 이 홍양리 5층석탑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남이 무슨 잘되는 일에 샘을 내는 것을 용심이라고 한다고 한다.
문화재를 찾아 헤매는 것은 힘들지만, 그러면서 얻게 되는 것도 많다. 예전 몇몇 분들은 자신의 차에 태워 문화재가 있는 곳까지 데려다 주기도 하였으며, 땡볕 아래에서 열심히 공부한다고 하며 수박을 먹으라고 준 기억도 있다. 절에서 내려와 버스를 타려고 할 때, 그 절의 노승께서 내려와 반갑게 이야기를 나눈 기억도 있고, 산성에 올라가 둘러볼 때 마침 하안거 전에 산성과 사찰은 찾은 스님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은 기억도 있다.
현대인들은 각박하다고들 하지만 정작 사람과 사람끼리 만나면 그렇기보다도 어느 정도의 정이 있는 것 같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 정으로서 반갑게 맞아주고, 또 친근하게 대해줄 때면 이게 과연 인심이구나란 생각이 든다. 기자가 사전조사를 간단히 하고 답사는 현장에서 이런저런 정보를 알아보면서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인심을 찾고 싶어서이다. 그리고 하루 종일 돌아다니는 답사 끝에는 늘 그 지역의 맛있다는 음식을 먹고 끝내니, 풍류라는 걸 멀리서 찾을 필요가 있겠는가! 요새 사람을 찾아 나서고, 옛 사람의 정취를 찾아 나서는 게 풍류가 아닐는지….
덧붙이는 글 | 2007년 5월 19일 홍산일대를 답사한 것에 대해서 쓴 것입니다. 이상으로 홍산 일대 답사를 마무리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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