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동서원 가는길... 장명등과 한껏 어울어진 배롱나무문일식
지난 5월 담양의 명옥헌을 돌아보며 배롱나무 한창 피어나는 한여름에 왔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면 여린 녹색의 새순이 돋고, 알록달록 원색의 아름다움을 피워낸다. 그 아름다움에 한껏 취하다 보면 세상은 녹색의 물결로 뒤덮이고 생명의 왕성함만이 남는다. 그렇다보니 7, 8월이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배롱나무의 화려한 색감은 봄에 찾아오는 곱디 고운 청순함을 떠나 무더운 여름만큼이나 정열적이다.
배롱나무는 사찰이나 서원, 고택에 주로 많이 볼 수 있다. 세월에서 묻어나는 녹록한 느낌과 어우러져 고고하면서도 정열적인 색감과 자태가 묻어난다. 비록 매난국죽의 사군자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한 계절을 풍미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번 경북남서부여행(달성, 성주, 김천)을 통해 고건축과 어우러진 배롱나무의 향연을 만끽했다. 배롱나무의 뛰어난 색감이 이번 여행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너무 인상이 깊어 서두를 빌어 몇 자 끼적여보았다.
새벽을 달려 경북 달성으로 향했다. 한 번에 내달려 인기척 없는 도동서원 앞에서 잠시 눈을 붙이려 했지만, 연일 이어지는 야근 속에 의지와 욕심만 앞섰나 보다. 감당 안 되는 눈꺼풀에 두손 들고 자동차 소음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었고, 쨍쨍한 햇볕이 뿜어내는 뜨거운 기운에 신경질적인 아침을 맞았다. 차 속에서의 불편한 숙면은 참 아이러니컬하다. 그러고 보니 갈 길이 참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