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해진 구두를 해에게 보여줄 때...

'맨발의 구두'를 깁는 신기료 장수 아저씨 이야기

등록 2007.08.19 12:10수정 2007.08.20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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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가 없다고 울적해지면 길에서 만난 다리없는 사람을 생각하라. - 카네기


구두는 그 사람의 얼굴
구두는 그 사람의 얼굴송유미
구두는 그 사람의 얼굴이다?

"신기료 장수 세 사람만 있으면 제갈공명 능가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평범한 사람 셋이 모이면 월등한 사람을 능가한다는 뜻이지만,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지혜로운 세 사람이 아닐까.

어느 전문직이든 오랜 세월 같은 직종에 일한다면 남이 갖지 못한 지혜가 보석처럼 가득하지 않을까. 신기료란 신기리오? 외치는 발음이 정확하지 않는 소리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세계적인 아동작가 안데르센이 신기료 장수라는 것을 모르는 아이들이 거의 없다. 우리 동네 삼거리에는 진짜 엄청 큰 맘모스 삼거리 극장 있고, 그 건물 돌아선 귀퉁이의 챙도 없는 땡볕을 파라솔로 가리고 구두를 깁고 수선도 하는 신기료 장수 아저씨가 있다.

이 앞을 지나다닌 지 십 년이 훨씬 넘었으니 신기료 아저씨도 우리 동네 터줏대감이다. 우리 동네 사람들뿐만 아니라 해수욕장에 놀러 오는 많은 관광객도 아저씨에게 뜨내기손님들이지만, 아직도 신기료 장수 일은 돈벌이와 무관한지 난전에서 구두를 수선한다.


'분홍신'의 끔찍한 기억의 구두

우리가 싣는 구두에 대한 예술작품은 참으로 많다. 동화 <신데렐라>의 '유리구두', 안데르센의 <분홍신>, 마이클 파웰의 영화 <분홍신>, 최근의 김혜수의 <분홍신>, 마그리트의 그림 <붉은 모델(맨발의 구두)>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구두에 대한 작품이 있다.


'유리구두'는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영원토록 회자화하고, 안데르센의 <분홍신>은 가난한 소녀가 우연히 손에 넣은 예쁜 분홍신에 병적으로 집착하고, 그 끈질긴 집착은 소녀의 두 발에서 벗어지지 않는 재앙이 되고, 결국 소녀는 스스로 제 두 발목을 도끼로 끊어달라고 사정케 한다.

<분홍신>은 인간의 부조리한 심리의 확대경처럼 신기료 장수였던 안데르센이 <분홍신>을 통해 보여준, 신의 응징은 참으로 끔찍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길이라는 것을 일러준다.

내 고마운 헌구두야, 미안해
내 고마운 헌구두야, 미안해송유미
꿈을 쫓는 구두와 마음의 구두들

구두를 수선하고 닦는 외길로 살아온 신기료 장수 아저씨는 이제 철학자가 다 된 것일까. 구두가 그 사람의 얼굴이라면서, 얼굴을 이렇게 해서 다니면 되냐고, 그리고 왜 맡긴 구두는 찾아갈 생각을 안 하느냐고, 꾸지람을 하신다.

나는 민망하기 짝이 없다. 구두 없이는 현관 밖 나서면 한 걸음도 못 걸어다니면서, 내 구두를 맡겨놓고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아저씨, 정말 깜빡했어요. 정말 죄송해요. 어디 좀 가는 길이라서요. 다음에는 꼭 찾아갈게요."

이렇게 사정하지만 아저씨는 안면 몰수 냉정하기만 하다.

"댁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 골치 아파요. 자기 신발을 맡기고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다니…."

그게 말이 될 법이냐는 표정이시다. 안 그래도 땡볕에 더욱 낯이 뜨겁다.

헌 신짝은 사정없이 버리는 사랑과 같다

외출할 때마다 화장하면서 나는 구두를 얼굴처럼 닦지는 않는다. 구두가 그 사람의 얼굴이란 말, 이런 경우는 딱 맞는 말이다. 정말 아저씨에게 부끄럽다.

내 구두는 내 험한 인생을 싣고 다니는 조각배. 내 인생을 싣고 해져서 닳아지는 그날까지 나와 함께 길을 걷는다. 그런데도 나는 그 소중함을 잊는다. 그러다가 헌 구두가 되면 사정없이 버린다.

아저씨는 냉정하게 말한 게 가슴이 아픈지 변명처럼 덧붙인다. 구두 임자가 혹시 구두를 찾아올까봐서, 그 많은 수선 구두를 아침마다 수레에 끌고 나오신다고…. 내게 없어서는 안 되는 구두가 신기료 아저씨에게 무거운 짐이 되다니…. 남의 구두 한 번 기워준 적도 또 닦아 준 적도 없는 내 인생, 누가 이제 헌신짝처럼 버린다 해도 나는 할 말을 없을 것 같다.

시내버스 정거장 한 켠 신기료장수
앉은뱅이 의자 위에 하루의 굽은 등 묶어 두고
상처난 신발들 꿰매고 있다
때절은 공구 통 연장들이
살아온 날들의 흔적처럼 어지럽게 널려 있다
바늘을 뽑아 올리는 부지런한 손길에서
길들의 아픈 부위가 하나씩 아물어 간다
사십년 고단한 얼룩의 날들,
그의 손을 거쳐
다시 새 길을 얻은 수많은 사람들의 길
튼튼하게 박음질 된 그 길을 따라간

하동 구례 광양 5일장을 따라
평생을 떠돌았을 낡은 구두
누구도 꿰매 주지 않던 그의 상처 난 길들이
이제는 시장 뒷켠으로 밀려나 있다
간간이 그의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들만이 소문처럼 찾아 주는 이곳
더 이상 꿰맬 길 없는 누더기 인생들이
서성거리는 오일 장터
아직도 그를 기다리는 구멍 난 길들이
수군거리고 있다

- 정연홍의 '신기료장수 길을 꿰매다'
#구두 #사람의 얼굴 #신기료 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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