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초에 맥그린치 신부는 이곳에 이시돌목장을 설립하였다.장태욱
1963년 3월 미국 정부로부터 무상으로 공여되는 사료(옥수수) 도입이 승인되자, 정부와 미대외원조국(USOM)과 가톨릭 구제회 3자의 협정에 의하여 1963년부터 1967년까지 322만 불에 해당되는 사료 곡물을 얻게 되었다. 그리하여 협회원들에게는 돼지를 살찌게 하여 수출하도록 하는 한편, 그 사이에 8천 정보의 사료포를 개발하여 사료를 자급할 수 있도록 꾀하였다.
'이시돌 농촌 산업개발협회'는 씨돼지를 개량하기 위하여 1964년 7월 뉴질랜드에서 바크샤 씨돼지 2천 마리를 비행기로 실어 오기도 하였고, 1964년 9월 살찐 돼지고기 303두를 홍콩으로 처음 수출하였다. 그리고 1970년 일본 스미도모상사와의 계약으로 1971년부터 연간 1만 마리를 직접 냉동 처리하여 수출하였다.
하지만 1979년 하반기에 이르러 돼지 값이 폭락하여 양돈 사업은 큰 타격을 입었다. 그래서 협회는 1980년 2월 양돈 사업부를 해체하고, 당시 이시돌 농장에서 사육하고 있던 돼지 7천여마리와 그 양돈 시설들을 양돈 사업부에서 일하고 있는 20명의 종업원들에게 인계하여 주었다.
또 1969년 제주도와 손을 잡고 개척 단지 조성 사업에 기술과 자금을 지원하면서 축산 단지 40세대와 양잠 단지 90세대의 정착을 도왔고, 1970년 10월 한림읍 금악리에 이시돌 농업기술 연수원을 설립하였다.
이 연수원에는 건평 420평에 기숙사·도서관·식당 등이 갖추어져 있다. 숙박비·수업료·교재 등 일체 경비를 연수원에서 부담하고, 연수생들에게 양돈·면양·비육우 등의 사육방법, 목야지 조성법, 목초 건조법, 사일레지 처리법과 가공법, 트랙터 운전과 정비법 등 농업 전문 지식들을 전문가들로부터 교육을 받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