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촌 조병희 선생님을 기리며>는 이달 말까지 전시된다.안소민
안 "지금 전시중인 '작촌 조병희 선생님을 기리며' 전은 사진으로 보는 개인의 역사라고 바꾸어 말해도 좋을 듯싶어요."
김 "네. 작촌 선생님을 처음 뵌 건 작고하기 4년 전쯤이었어요. 그분을 딱히 뭐라고 한마디로 지칭하긴 어려워요. 하지만 이 지역 향토문화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아꼈던 분이었죠. 그분이 살아계실 때 앨범을 본 적이 있어요. 그 사진 속에는 자제분들의 어릴 적 모습, 친지의 결혼식, 조부모님의 장례 모습 등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담겨있었어요. 한 사람의 일생을 통해서 이렇게 다양한 사회사적 모습을 볼 수 있기는 그리 쉽지 않을 거예요. 그것도 사진으로요. 매우 의미 있는 사진들이었죠."
포근한 정이 모락모락 익어가고 있는 계남정미소
안 "결국, 김 작가님께서 추구하는 사진의 존재의미랄까요. 그것도 결국 이런 것이 아닐 런지요."
김 "네. 지난 묏동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전 지나간 것, 옛것,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에 대해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어요. 예술사진도 물론 좋지만 한 사람의 삶과 역사를 담고 있는 사진, 한 시대의 아픔, 슬픔, 기쁨 등의 정서를 고스란히 껴안고 있는 사진들을 좋아해요.
참! 올해 추석무렵부터 전북도청사 갤러리에서 '이발소전'을 해요. 이발소도 제가 몇 년 동안 쭉 찍어왔던 대상이에요. 그 사진들을 모아서 이번에 한번 선보이려고요. 이발소도 이제 우리 머릿속에서 잊혀지고 있는 것들 중의 하나거든요."
안 "다른 계획은요?"
김 "8월 6일부터 10일까지 이 지역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체험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어요. 이 지역 아이들은 도시아이들에 비해서 디카와 같은 디지털 문화에 소외되어있어요. 이번 행사 제목은 '계남정미소에 사진찍으러 가요'인데 바늘구멍사진기를 만들어봄으로써 사진의 원리와 현상을 직접 경험해보는 자리예요. 자신이 만든 사진기를 가지고 섬진강에 있는 물고기도 촬영해보고 옥수수 수확하는 현장도 직접 찍어보는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에요."
안 "우와~ 무척 재미있을 것 같아요. 사진도 찍고 옥수수도 따고, 물고기도 잡고."
김 "이 지역만이 줄 수 있는 특성과 장점을 최대한 살려야죠. 아마 동네분들도 많이 좋아하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안 "동네분들과는 많이 친해지셨나요?"
김 "아유~ 이젠 뭐 거의 딸같죠. 처음에는 많이 낯설어하셨지만 지금은 많이 이해하시고 또 많이 좋아하세요. 심심하면 이곳에 놀러 오셔서 사진도 둘러보시고 낮잠도 주무시고 가세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김 작가와 막 처음 정미소에 도착했을 때 동네 마을분이 김 작가의 우편물을 대신 맡아놓았다가 가져다주었을 때 '점심 먹구 가' '아녀. 그냥 갈래'라는 두분의 대화에서 옆집 언니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취재를 마친 뒤, 나를 바래다주기 위해 김 작가의 차를 타고 마을 어귀를 돌아설 때 그때 정자에 앉아서 쉬시던 할머니 한분이 '벌써 집에 가남?'이라고 살갑게 물어 오시는 것에서 이미 이 동네의 일부가 되어버린 김 작가와 그의 공간을 느낄 수 있었으니 말이다.
'계남정미소에 참새는 더 이상 오지 않는다'라는 김 작가의 솜씨인 듯한 스케치가 그곳에 걸려있다. 보는 순간 마음 한곳이 찡해왔다. 그러나 참새가 오지 않으면 어떠랴. 이미 그곳에는 많은 발길들이 오가고 있다. 하얀 쌀은 더 이상 흘러나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제 그곳에는 수많은 이야기들과 포근한 정이 모락모락 익어가고 있다.
▲오늘날,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가 구수하게 익어가는 계남정미소.안소민
| | 그녀와의 특별한 점심 | | | |
| | | ⓒ안소민 | | 애초 진안시내에서 맛있는 것을 사주려고 했단다. 그러나 나의 잘못된 시간계산과 뜻하지 않았던 차량말썽사건으로 인해 우리는 빠듯한 점심을 먹어야했다.
뭐 굶어도 상관은 없었다. 점심 한끼 굶는다고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나 김 작가는 주인입장에서 그게 아니었던 모양. 더구나 명색이 '정미소'까지 왔는데. 김 작가는 조금 궁리하다가 뜻밖의 제안을 꺼냈다. '라면 드실래요?'
비 오는날, 조금은 눅눅한 방안에서 젖은 머리를 말리며 먹었던 그날의 라면 맛은 정말 최고였다. 이제껏 많은 라면을 먹어왔지만 그날처럼 맛있었던 라면은 아마 없었던 듯하다. 김 작가가 정성들여 수확한 파와 야채까지 곁들였다. 게다가 약간은 덜익은 듯한 꼬들꼬들한 면발을 좋아하는 내 식성까지 어떻게 사전입수(?)했는지 내 입맛에 딱 맞게 나온 라면이었다. 연신 '맛있다'를 연발하는 내게 김 작가는 '원래 남이 해주면 더 맛있다'며 겸양을 보였다. 그리고 그 뒤에 마신 진한 커피 한 잔도 정말 잊을 수 없는 후식이었다.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취재를 마치고 가는 내손에 김 작가는 자신이 직접 기른 토마토와 가지, 고추를 담은 봉투를 쥐어주었다. 토마토의 생김은 굉장히 거칠었다. 아마 자연에서 날 것 그대로의 상태로 자랐기 때문이리라. 가지는 집에 가지고 가서 무침을 해먹었다. 가지무침을 한입 먹었을 때 우~하던 옥수수 잎사귀 소리가 들렸던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잊을 수 없는 성찬이었다. / 안소민 | | | | |
덧붙이는 글 | 계남정미소 홈피 http://www.jungmiso.net/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