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경사 대웅전 뒷편에 있는 비사리 구시.문일식
비사리 구시는 대체로 전각 뒤에 초라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세가 컸던 시대의 산물인데, 지금 쓰이지 않는다하여 건물 뒤편에 옹색하게 놓인 모습이 무척 안Tm럽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사람들의 눈길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는 소나 말이 쓰는 구유로 전락하고 만다. 아쉬울 뿐 이다.
대웅전 뒤편에 올라서면 높은 기단위에 고만고만한 전각들이 지붕을 나란히 5채가 연달아 있다. 맨 왼쪽부터 부처님의 생전 8가지 모습을 안치한 팔상전, 불교와 토속신앙의 한 면을 보여주는 내연산 산신을 모신 산신각, 보경사를 거쳐 간 스님들의 영정을 보관하는 원진각, 부처의 16명 제자인 나한상을 안치한 영산전, 그리고 마지막에 'ㄱ'자로 꺾인 지하세계를 관장하며,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명부전이 그것이다. 전각들이 모두 다닥다닥 붙어있어 필연적으로 맞배지붕을 얹은 모양이다. 마치 단단히 스크럼을 짜고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다.
보경사를 한 바퀴 둘러봤으니 이제 내연산에서 굽이굽이 이어져 내려오는 12폭포 둘러봐야 한다. 보경사를 품어 안은 내연산은 문수봉과 930m에 이르는 향로봉 사이에 있는 산으로 예전에는 종남산으로 불리다가 신라시대 진성여왕 때 견훤의 침입으로 이 산에 머무른 후 내연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내연산을 오르는 사람도 많지만, 대체로 연산폭포까지의 트레킹을 즐기는 유람객들이 더 많은 것 같다. 12개의 폭포는 쌍생폭포를 시작으로 쌍폭인 관음폭포와 그 위로 같이 어우러져 최고의 폭포로 각광받는 연산폭포를 지나 복호폭포, 시명폭포로 마무리 된다. 이제 영화 '가을로'에 나왔던 그 길을 곱상하니 걸어볼 시간이다.
보경사 담장을 따라 만들어진 시멘트 수로를 따라 맑디맑은 물들의 걸음이 무척 힘차다. 어제 내린 비로 더욱 맑아진 듯하다. "오늘 폭포구경 한 번 제대로 하겠구나" 싶었다. 괜히 신바람이 난다. 얼마가지 않아 물길 건너편으로 서운암을 지난다. 이곳 서운암에는 11기의 부도가 옹기종기 모여 있고, 마치 작은 안식처처럼 돌담으로 둘러져 있다. 돌담 위로 부도의 상륜부가 언뜻언뜻 보이는데 내려오는 길에 들르기로 하고 12폭포 유람을 위해 발길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