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볕더위를 피해 평상 밑에 잔뜩 웅크린 풍산개 태백정판수
수건 하나 달랑 들고 나서는 길에 불볕더위가 사람만 데우는 게 아닌지 보이는 풀꽃 모두 몸을 비틀고 있다. 화분에 심어 놓은 풍로초는 물을 겨우 사흘쯤 안 줬는데 시들시들하고, 호박잎도 뽕잎도 두릅잎도 잎사귀를 오므린다. 아마도 활짝 펼치는 것보다는 그러는 게 더위를 피하는 방법인 것 같다.
물가를 찾아가는 길에 이번 더위의 가장 피해자를 봤다. 지렁이였다. 지렁이… 시골 사는 이가 아니라면 징그러운 존재이리라. 그러나 시골에선 더없이 소중한 존재가 아닌가. 온몸을 뒹굴며 땅을 가장 기름지게 만들어주니까.
헌데 지렁이가 도로 위에 말라죽어 가고 있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 처음에는 참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땅 속에 그냥 머물러 있었으면 아무리 바깥이 뜨거워도 말라죽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만약 땅 밑 얕은 곳이 마르면 더 깊은 곳을 찾으면 될 테고. 습기 많을 곳을 찾아가는 건 녀석들의 본능일 테니까.
그러나 자리를 옮기면 다르다. 다행히 비가 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물웅덩이가 군데군데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게 없으련만, 마른 맨 땅이거나 옮기는 도중에 순식간에 말라버리면 어쩔 수 없이 거기서 타 죽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