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전 경기지사.오마이뉴스 남소연
손학규는 '호감' 넘버원이다. 비한나라당 후보를 대상으로 조사한 '인지호감도'에서 손학규는 정동영과 이해찬을 앞서며 유일하게 50%를 넘겼다(<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 강원택 교수(숭실대 정치학)는 손학규의 호감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이념적으로나 정책적으로 개혁이미지가 있으면서도 극단적이지 않다. 아주 강한 보수여서 구닥다리란 느낌도 안주고 아주 강한 진보여서 비현실적이지도 않다. 운동권 출신이면서도 보수정당에서 오랫동안 몸담아 왔고 경기도지사 경험이 있으니 합리적인 수준에서 일을 처리할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구체적인 비전이 있어서가 아니라 무리하지 않을 거라는 안정감 때문인 측면이 크다."
손학규에겐 언론도 호의적이다. 정치부 기자의 40% 정도가 여야를 막론하고 손학규를 바람직한 대통령으로 꼽았다(<미디어오늘>조사). 작년 6월 경기도지사 임기를 마치고 돌입한 민심대장정에 대한 우호적인 보도는 손학규가 마의 5% 벽을 깨는데 발판이 되었다.
또한 지지율 면에서 이명박과 박근혜와 견줄 수 없지만 언론은 항상 그를 '빅3'로 묶었다. "내 지지율이 과거 손학규 지지율까지 올랐는데 나는 왜 '스몰3'라고 쓰냐"는 홍준표 의원의 불만도 일리가 있다.
반면 유시민의 언론에 대한 불만은 거의 체념 수준이다. "노무현의 정치적 경호실장을 자처한 유시민"이라는 언론의 표현에 대해 "나는 자처한 적이 없다"고 항변을 해도 소용없다. 논란이 되었던 "청년실업 각자가 해결하라"라는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당사자의 주체적인 노력과 자세를 강조하기 위해서 한 말"이라고 해명했지만 여즉 그를 따라 다닌다. 한마디로 자신은 '님'이라 하는데도 언론은 점하나를 찍어 '남'이라고 보도한다는 억울함이다.
손학규-유시민조, 이들의 승부는 어디로 수렴될까?
[이해찬-유시민] '환상의 복식조' 언제까지 유지될까
한 네티즌은 이해찬-유시민에 대해 손학규에 맞설 "환상의 복식조"라고 평가했다. 같은 편이라는 얘기다.
이해찬과 유시민은 3년만에 의석수 반토막이 난 열린우리당의 당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대통합신당의 전제조건으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노선과 가치를 공히 계승해야 한다는 점을 내세운다. 열린우리당 해체 주장에 맞서 '당 대 당 통합'이라는 일치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해찬 캠프에서 홍보 일을 맡고 있는 유시춘(유시민의 누나)씨는 "둘이 적대적 경쟁 관계에 서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지 않는 한"이라는 전제로 아예 못을 박았다. 유시민의 대선 후보 출마를 두고 '친노 세력의 외연확대를 위한 전략적 경쟁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그럴 수 있다. 부인하지 않겠다"고 털어놨다.
이해찬-유시민의 경쟁은 시너지를 높이는 게임이다. 유시춘의 말을 다시 들어보자.
"87년 대선에서 김대중-김영삼은 63% 지지를 얻었지만 분열로 패배했다. 그 때 양김을 지지했던 민주개혁세력의 권위를 정확히 계승하고 있는 사람이 이해찬이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민주 대 반민주를 얘기할 순 없다. 유효기간을 다한 상품이다.
87년 때 태어난 친구들이 올해 처음으로 대선에서 투표권을 행사하게 된다. 문화적으로 디지털 군단이고 가난과 독재를 모르고 태어난 세대다. 이들에겐 세상을 보는 새로운 잣대와 국가 비전이 필요하다. 이 두 세대가 만났을 때 20년 전 구도는 확대 재생산될 수 있다."
그런데 이해찬은 후자가 취약하다. 한 달 전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뒤늦게 홈페이지(www.chans4u.net)를 가동했다. 넷심을 얻기 위한 시도 자체가 없었다. 또 국회의원 5선에, 장관, 총리까지 안 해본 건 대통령뿐이니 '국가원로'급으로 느껴진다. 이해찬(52년생)과 손석희(방송진행자·56년생)가 같은 50대라는 건 믿겨지지 않는다.
유시민은 이해찬의 취약점을 정확히 반대측면에서 대변하고 있다. 일찍이 인터넷상에서 소통을 해왔고 90%는 네티즌 지지자들이다. 대선 후보들 중 민주당의 추미애 후보와 민주노동당의 심상정 후보와 동갑내기로 최연소 40대 그룹(59년생)에 속한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청년층을 공략할 수 있는 우월적 지위에 있다.
지역적으로도 둘은 상호보완재다. 이해찬의 고향은 충남 청양이지만 이미지는 '호남 사람'으로 형성되어 있다. 친DJ 이미지 탓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래 민주화 운동을 해왔고 또 '이해찬 세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국민의 정부 시절 교육부 장관 이해찬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유시민은 경주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한, 아직까지도 경상도 억양이 남아 있는 영남 사람이다.
"1985년 10월경이었다. 시민이가 출소하던 날, 나와 당시 민평련 정책실장을 맡고 있는 이해찬 (전) 총리가 함께 마산에 내려갔다. 그런데 총리가 또 오기로 한 사람이 있다며 누군가를 기다리더라. 그 사람이 바로 부산의 노무현 변호사였다. 지금 와 생각해 보니 사람의 인연이란 게 참…."
유시춘의 회상이다. 그 뒤 이해찬은 1988년 총선에서 국회 첫 입성한 초선의원이 되었고, 유시민은 그의 보좌관으로 2년 남짓 돕다가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이해찬, 내 맞수는 손학규... 휴가 떠난 유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