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 산장으로 올라가면서 찍은 킬리만자로 키보 봉우리김성호
다시 출발해 안장 산등성이를 계속 걷는데, 조그만 바위 위에 일본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걸터앉아 쉬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인으로 생각했던 등산객이 우리말로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니, 여기 웬 일이십니까."
"한국에서 오셨습니까?"
"나 누군지 모르세요."
"아, 김운경 선생님 아니십니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을 킬리만자로 정상 바로 아래에서 만났다. 아프리카 여행 오기 전 내가 좋아했던 텔레비전 드라마 <황금사과>를 쓴 작가 김운경씨였다. 설마 우리나라 사람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데다 김씨가 선글라스를 써서 몰라봤던 것이다.
"아 그런데, 김 선생님, 그 <황금사과>는 왜 아역시절 연기를 갑자기 줄이고 성인 연기로 바로 넘어 갔나요"
"그럴 사정이 있었습니다."
"아역시절 연기가 내가 자라던 시골 상황과 비슷해 드라마에 푹 빠졌었는데, 갑자기 성인 연기로 옮기면서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나는 킬리만자로 산에서도 드라마 <황금사과>에서 아역 연기가 대폭 줄어들면서 드라마가 일찍 종영하게 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놓고 있었다. 나는 김씨가 왜 킬리만자로에 왔는지 보다는 드라마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이다. 김씨 입장에서는 황당했을지 모르지만, 그만큼 내가 이 드라마를 좋아했고 평소 <옥이이모><서울의 달><형> 등 김씨의 서민적이고 소탈한 드라마를 워낙 즐겨 보았던 팬이기 때문이다.
평소 산을 좋아한다는 김씨는 딸과 함께 산악회원들의 단체 등반에 같이 왔다고 한다. 우리는 마웬지 봉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나는 키보 산장으로 올라갔고, 김씨는 호롬보 산장을 향해 내려갔다. 김씨는 내려가면서 정상 등반할 때 먹으라고 내 주머니에 무언가를 잔뜩 넣었다. 땅콩과 캐러멜, 초콜릿 사탕이었다.
마지막 키보 산장에 도착하니 고산증이 나타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