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잃어버린 10년' 되찾으려면...

[김당의 대선 톺아보기]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엄격한 검증을 기대한다

등록 2007.07.18 18:26수정 2007.07.18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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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은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국민회의와 민주당에 졌다. 한나라당과 보수세력은 이 기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지금 '좌파정권 10년에 나라경제가 파탄났다'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을 외치고 있다. 그쪽(보수 세력) 사정이요, 그쪽의 시각이다.

다른 쪽, 진보세력의 시각에서 보면 지난 10년은 '되찾은 10년'(정동영 전 의원)이다. 어쩌면 '권력을 잃어버린 10년'(추미애 전 의원)이라고 하는 것이 가치중립적 표현일 것이다.

두 번의 대선 패배와 '네거티브'에 대한 피해의식

아무튼 한나라당은 두 번 패했다. 한번은 39만 표 차이로, 다른 한 번은 더 큰 표 차이로 졌다. 패인은 분분하지만 승인은 이렇게 요약된다.

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지역등권론'과 'DJP연합'으로 승리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신행정수도 공약'과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로 승리했다. 지역적으로는 충청권과의 '서부연합'이었고, 선거구도 상으로는 '제3후보'(이인제와 정몽준) 덕분이었다.

그리고 선거판을 크게 출렁이게 한 네거티브 변수로 '북풍'과 '병풍' 그리고 '세풍' 등이 있었다.


97년 대선에서 야당인 국민회의는 김대중 후보에 대한 안기부의 '북풍 공작'과 국세청의 '세풍' 공세 그리고 각종 흑색선전을 막아내면서 이회창 후보 아들들에 대한 '병풍' 공세를 폈다.

당시 정부여당은 김대중 후보 친인척의 모든 금융거래 내역을 뒤져 그 입출금 총액에 근거해 '600억원대 DJ 비자금설'을 폭로하는 치졸한 방법을 썼다. 그것으로는 '약발'이 없자, 국세청을 동원한 '세풍'과 안기부가 공작한 '북풍' 그리고 북한의 판문점 총격을 유도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총풍'까지 시도했다.


2002년 대선에서는 여당이 된 민주당이 주로 네거티브 공세를 펼쳤다. 김대업씨의 '병역비리 은폐 대책회의' 의혹과 설훈 의원이 제기한 '최규선씨 20만 달러 제공설'과 기양건설 자금 10억원 수수설 등이 그것이다.

2002년 2월 당시만 해도 50%대였던 이회창 후보 지지율을 30%대로, 20%나 떨어뜨린 것은 그해 3월초에 설훈 의원이 터뜨린 '가회동 빌라 게이트'라는 '한방'이었다. 설 의원은 여세를 몰아 그해 4월에 '최규선씨 20만 달러 수수' 의혹을 제기했으나 이것은 설 의원에게 '무고'의 족쇄가 되었다.

한나라당, 검찰 '수사'를 피하기 위해 국민 '검증' 택한 것

5~6월에 다시 상승세를 탔던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은 7월말에 김대업씨가 '이회창 후보 아들 병역비리 대책회의 은폐' 의혹을 공개적으로 주장하면서 다시 추락하기 시작했다. 한나라당은 신속하게 김씨를 고소했으나 검찰 수사는 이듬해 2월까지 6개월이 걸렸다. 그 사이에 대선은 끝났고 한나라당은 패배했다.

<중앙선데이>(7월 15일) 보도에 따르면, 2002년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대선 관련 사건 8건에 대해 고소고발부터 수사결과 발표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11.5개월이었다. 형사소송법에서 정한 검찰 고소고발 처리기간(3개월)의 4배에 이른다. 그래서 '느림보 수사'로 의혹만 부풀렸다는 것이다.

물론 검찰 수사가 명예훼손 사건의 본안 사건에 해당하는 이회창 후보 아들들의 병역비리 혐의가 없다고 결론내린 것은 아니다. 다만, 김대업씨를 무고 및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기소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정권을 도둑맞았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정서다.

그래서 한나라당은 2002년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권토중래(捲土重來)의 기세로 절치부심(切齒腐心)하고 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국민'의 이름을 빌려 당내에 설치한 '국민검증위원회'다. 즉, 한나라당은 검찰 '수사'를 피하기 위해 국민 '검증'을 택한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5월에 출범한 이후 ▲후보자 자질과 도덕성(후보자 공ㆍ사생활) ▲재산·병역·범죄경력·납세 ▲공신력 있는 언론에 보도돼 국민적 관심이 고조된 사항 ▲그외 검증위 의결로 결정된 사항에 대한 검증활동을 벌여온 한나라당 국민경선위원회는 19일 하루를 오전오후로 나누어 박근혜·이명박 경선 예비후보에 대한 역사적인 후보검증청문회를 개최한다.

안강민 국민검증위원장은 18일 "일반인으로부터 신고받은 총 87건과 검증위에서 결정한 검증대상을 선별해 이명박 후보에 대해서는 차명재산 의혹 등 총 22건, 박근혜 후보에 대해서는 육영재단 관련 의혹 등 총 12건을 검증 대상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검증위원장 스스로가 검증 활동의 실효성에 의문 제기

한나라당이 정당 사상 유례없는 '후보검증위'를 만든 첫째 이유는 사전에 자당 후보의 신상과 자질 그리고 능력을 국민에게 공개함으로써 선거에 임박해 폭로된 네거티브 공세로부터 후보를 보호하고 대선 승리를 이루기 위해서이다.

이를 위해 국민경선위는 후보 상호간 직접 공방을 억제할 것과, 검증위서 요구하는 검증자료는 모두 제출하고, 상대방에 관한 의혹과 비난자료 등도 모두 검증위를 통해 확인하도록 했던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인 후보검증청문회를 하루 앞은 18일 안강민 위원장이 밝힌 그동안의 검증결과는 너무 실망스런 것이다.

안 위원장은 이날 "검증위원장을 또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는다면 거절할 생각인가"라고 묻는 <오마이뉴스> 기자의 질문에 뜻밖에도 "그렇다"고 대답했다. 검증위원장 스스로가 검증 활동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그가 가장 큰 문제로 꼽은 것은 '후보들의 비협조적인 태도'였다. 수사권이나 조사권이 없어 후보들의 자발적 협조를 거듭 요청했지만 이에 불응하거나 질문서에 대해 불성실한 답변을 보내오곤 했다. 그에 따르면, 때로는 자료제출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언론에는 제출했다고 발표하거나 검증목적과는 관계없는 자료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회창 후보의 패배는 그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했기 때문

이쯤 되면, '안 봐도 비디오'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19일의 역사적인 검증청문회는 역사적인 부실청문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안 위원장조차도 당 검증위의 검증 실효성에 대해 "나도 상당히 의심을 갖고 있다"며 "당에서 하는 후보검증 청문회가 필요한지 의문이다"고까지 밝혔기 때문이다.

또 다른 우려는 철저한 후보 검증을 다짐한 당 지도부와 검증위의 당초 장담과 달리 검증청문회가 결국 두 후보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통과의례로 전락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발표에 따르면 검증위는 청문회를 엿새 앞둔 12일 두 후보에게 A4용지 50장 분량의 예상 질문지를 전달했다. 대학 시험에 비유하면, 후보들에게 '오픈북 테스트'로 시험을 치르게 한 셈이다. 이처럼 예상문제를 뻔히 아는 상황에서 치르는 시험은 엄격한 검증보다는 누가 더 호소력 있는 답변을 내놓을 것인지를 보여주는 '쇼'로 전락할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이명박·박근혜 두 후보 지지율의 단순합계는 60~70%에 이른다. 그런데도 이처럼 막강한 두 후보를 대상으로 굳이 '국민검증 시험'을 치르게 하는 것은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그 '불안'의 실체를 잊고 있는 듯하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치솟았던 이회창 후보 지지도는 설훈 의원이 "서울 가회동 호화빌라 두 채를 얻어 장남 가족과 살고 있다"며 비자금 유입 의혹을 제기하면서 곤두박질 쳤다. '비자금 유입 의혹'을 믿어서가 아니라 '호화 빌라 두 채에서 사는 팩트' 앞에서, 국민은 그가 서민과는 거리가 먼 '귀족'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후보의 패배는 그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물며 '국민'의 이름을 빌린 '검증청문회'가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면, 그 결과 역시 '안 봐도 비디오'다. 그래서 차라리 청문회의 실효성을 의심하는 안강민 위원장의 발언은, 역사적인 국민검증청문회에 대한 국민의 과도한 기대심리를 낮추고 '면피'를 위한 전술적인 '물타기'였기를 바란다.
#검증청문회 #박근혜 #이명박 #안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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