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다음날 휘문학교에서 사자후를 토하는 몽양.몽양 선생 기념사업회
올해는 몽양이 가신지 60주년이 되는 해다. 몇 해 전 이기형 시인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하여 몽양기념사업회로 초대를 받고서 미적거리다가 끝내 약속을 지키지 못하였다. 서거 60주기 추모제 초대장을 펼치는데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 하였다.
"몽양의 노선이 옳았다."
어릴 때부터 그 말씀을 여러 번 들었다. 이 참에 왜 몽양의 노선이 옳은지, 유족을 만나 확인하고 싶었다.
몽양기념사업회로 연락하자 여인호씨를 소개해 주었는데, 아버님 여명구(몽양의 조카)씨가 위독하여 중환자실에 있어 시간을 낼 여유가 없다기에 강준식 상무이사와 평소 몽양을 가까이서 뵌 이기형 선생을 한 자리에 모셔서 말씀을 듣기로 하였다.
두 분에게 연락드리자 흔쾌히 수락해 주셔서 지난 7월 12일 오후 1시 마포의 한 찻집에서 만났다. 올해 91세인 노구임에도 몽양 선생 일이라면 마다않고 달려오신 이기형 선생의 열정에 고개 숙였다. 먼저 이 선생에게 몽양 선생을 만났던 일화부터 들었다.
목마른 자가 물을 찾듯 지도자를 찾다
"내가 처음 몽양을 본 것은 함흥고보를 졸업한 1938년 가을이었다. 그 때 나는 목마른 자가 물을 찾듯 지도자를 찾고 있었다.
경성부 계동 140번지 8호를 찾았을 때 몽양은 집에 없었다. 곧 돌아오실 거라는 말에 그 부근을 돌아다니며 기다렸다. 해가 서천에 떨어지기 직전쯤에 곤색 레인코트에 밤색 중절모를 쓴 풍채 좋고 훤한 분이 골목을 돌라 올라오는 것이 눈에 띄었다.
사진도 본 일이 없건만 직감적으로 대번에 여운형 선생임을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여 선생님이시지요?'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렸다.
'예, 그렇소마는….'
반가워하며 걸음을 멈춘다. 빛나는 눈과 반백 콧수염과 다정한 눈웃음이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그분은 나에게 문간방(응접실)에 들어가 기다리라 하고 옷을 갈아입으러 안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찾아온 뜻을 다 듣고 난 선생은 선생의 지도자론을 펴는 것이었다. '오늘날 세상에서 지도자라고 떠드는 사람들은 남더러 이리 가라 저리 가라 손가락질만 하구 있어. 그나마 그릇된 방향으로 마치 수탉이 세차게 싸우노라 돌진해 나가다가 서로 방향감각을 잃고 저만치 빗나가버리는 것과 같거든. 몸소 사람들 선두에 서서 살 길을 찾아 내달리는 지도자, 바로 그런 지도자가 필요하단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