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플레인(Champlain) 다리에서 바라본 로렌스 강(Lawrence river). 몬트리올로 넘어가는 다리들이 인상적이다.문종성
"안녕, 친구."
빅토리아 다리에 잠시 서서 사진을 찍고 있을 때 뒤에서 젊은 청년 하나가 말을 걸어왔다.
"안녕."
대개는 몇몇 스쳐 지난 라이더들의 인사도 이걸로 끝이었으므로 나는 청년이 더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었다. 하지만 그는 내게 관심을 보였다. 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에 대한 간단한 정보들을 파악한 그와 나는 서로의 마음을 눈치 채고 '함께'라는 말도 꺼내지 않은 채 어느 새 '함께' 라이딩을 하게 되었다.
생명의 숨결이 남아 있는 한 우리는 태양의 반대편까지 달려갈 각오가 되어 있으니 이 얼마나 어린 아이 같은가? - 엘리자베스 비숍
"한국에서 왔다고? 난 바레인 출신이야.(그의 발음이 프랑스식이었으므로 처음엔 뉴햄프셔 주의 리버넌(Lebanon)에서 온 줄 알았다.) 그나저나 비가 많이 오는군. 어디까지 가는데?"
"다운타운 근처에서 누구를 좀 만나기로 했거든. 근데 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단 말이야. 일단 다운타운 가서 다시 연락을 해 보려고 해."
나의 아쉬움은 빗속을 이리저리 피해 그 친구에게 전해졌다. 친구의 이름은 바디(Bidih). 맥길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친구다.
"그래? 내가 도와줄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혹시 주소가 어딘지 알아?"
하지만 내겐 주소 대신 나를 기다리는 분의 연락처만이 있을 뿐이었다. 지난 번 버몬트 자전거 숍에서 만난 노부인이 연락하라던 남편에게는 궂은 날씨에 번거로울 것 같아 따로 연락하지 않았다. 대신 포킵시에서 만난 분이 가면 들르라는 연락처를 받아온 상태였다. 바디는 직접 공중 전화기로 가서 연락을 취한 다음 주소를 파악해 길을 찾기 시작했다.
"근데 바디 넌 여행 많이 다녔니?"
"응, 난 주로 아시아 쪽으로 많이 다녔어. 중동이야 태어난 곳이라 주변으로 몇 나라 다녀본 경험이 있지. 바레인 주변국들. 레바논이나 시리아, 그리고 이집트, 터키. 그리고 유럽도 다녀오고. 하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인도 여행이었어. 특별히 내 자아를 깊게 성찰할 수 있어서 좋았지."
"인도가 명상으로 유명한 나라지."
간단히 맞장구를 치니 나와 보조를 맞추며 달리는 바디가 인도 여행한 이야기를 꺼낸다.
"인도는 참 특별한 곳이야. 재작년에 갔었는데 말야, 내 마음이 혼란스럽고 어려울 때 아무런 방해 없는 고요한 상태에서 명상에 잠기면 마음이 그렇게 편안해질 수가 없는 거야. 그리고 더 또렷해지는 생각의 편린들이 하나 둘씩 모아지는 느낌이지. 사실 몸도 좀 찌뿌둥한 거 같았는데 명상 뒤로는 개운해진 것도 같아."
인도를 다녀온 사람에게는 으레 들을 만한 경험담을 늘어놓고 있었지만 어쩐지 바디의 말을 통해 인도가 내면으로 푸근함을 주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참, 그리고 작년엔 여자친구랑 중국엘 다녀왔지. 병마용? 서안에 있는... 너무 멋지더라구. 진시황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됐구. 그리고 공자가 살았다는 곡부(曲阜)도 갔었지. 역사가 유구하고 화려해서 그런지 중국도 역시나 매력적인 곳이야. 하지만 먹는 건 좀 적응이 안 되더라구."
기이한 중국 음식과 마주쳤을 때 당황한 그의 모습을 상상하니 '아니 봐도 비디오올시다'이다.
"여자친구랑 중국에 갔어? 아니 뭐 유럽 같이 좋은데 다 놔두고 왜?"
"음, 여자친구 전공이 역사학이거든. 난 철학이고."
그러고 보니 얼추 아귀가 맞아 떨어지는 듯하다. 역사학과 철학의 만남, 일단 둘 다 실용적인 전공이 아니란 것에 놀랐다. 전공에 맞춰 여행 계획을 짜고 여행 겸 답사 형식으로 다녀온 것이 꽤나 신선했다. 왜냐하면 커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 여자친구랑은 힘들어. 성격 차이가 나거든. 난 개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어쩌자고 개를 방에서 같이 키우는지. 개 때문에 스트레스 쌓여."
바디는 여자친구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
'에효~ 안장 위에서 아주 배부른 소리하고 앉아 있구나.'
솔로의 염장을 지르는 썩 달갑잖은 푸념이지만 일단 환하게 웃어주며 걱정 말라고 다독여준다. 원래 그런 거라면서. 연애도 해 보지 않은 내가 그런 토닥거림을. 하지만 다음 말은 나를 더욱 좌절로 만들어 버렸다.
"동거하거든."
'동.거.하.거.든…. 아니 이 녀석 벌써 결혼했나?' 세찬 의심의 바람이 휘몰아치자 뒤늦게 그의 신상을 캐보았다. 하지만 그는 미혼일 뿐더러 생긴 것 답지 않게 이제 겨우 스물 셋이란다. 아이쿠~! 아무리 봐도 스물 여덟 아홉은 되어 보이는데. 하긴 나도 미국에서 20대 초중반이란 소리를 많이 들었으므로 넘어가기로 한다. 믿거나 말거나.
어쨌든 내게 동거는 부담스러운 단어임에는 틀림없었지만 여러 문화가 존중되며 공존하는 '모자이크 문화' 몬트리올에서 그런 것을 이해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부디 그 둘이 결혼까기 이어지길 바라면서.
시골길보다 도시에서 헤매는 게 더 피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