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적암 불전.안병기
장독대 옆으로 난 계단을 통해 법당으로 내려간다. 전등도 켜지 않은 채 촛불 몇 자루가 밝히고 있는 법당 안은 조용하기 짝이 없다. 가히 소리의 무덤이라 할 만하다. 마당을 바라보니 잔디 외엔 아무것도 심지 않은 텅 빈 공간이다. 마당은 법당의 외로움에 상관하려 들지 않고 법당은 마당의 쓸쓸함에 끼어들지 않는다.
고요란 이렇게 타 존재에 상관하지 않고 자기 영역만을 지킬 때 발생하는 현상이다. 잔디 위로 빗방울이 쏟아지고 있다. 마당이라는 존재에 가 닿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빗방울. 마당이라는 존재와 빗방울이라는 존재가 부딪치는 순간마다 고요는 산산조각나고 만다.
천천히 산을 내려간다. 비만 내리지 않는다면 쉬엄쉬엄 걸어가며 몽상에 잠기고 싶을 만큼 호젓한 길이다. 사실 내 여행의 목적에는 마음 안에도 이런 산길처럼 아늑한 길을 내는 것도 들어 있다. 결코 쉽게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희망이다. 그 희망은 길 위에 있을 적엔 이루어지는 듯이 보이지만 일상으로 돌아가면 곧장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만다.
저만치 마곡사가 보인다. 아흐, 저 정다운 세속. 떠나고 싶지 않은,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덧붙이는 글 | 지난 7월 2일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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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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