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문 앞에서 바라본 충남 문화재자료 66호 해탈문의 뒷모습. 천왕문 왼쪽 계단으로 올라가면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영산전이 있다.안병기
마음을 두 번 씻은 후에야 비로소 닿는 절
아침 일찍부터 비가 내린다. 비 내리는 산사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느닷없이 나를 충동질 한다. 십여 년 전이었던가. 공주 마곡사 대광보전 처마에 서서 갑자기 쏟아지던 소나기를 피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덧없는 마음이 일으킨 한 생각이 내 발길을 공주 태화산 기슭으로 이끈다.
마곡사는 충남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태화산(614m) 기슭 남쪽에 몸을 감추고 있다. <택리지> '팔도총론' 충청도 편은 이곳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산 위에 맺혀 된 터이나 둔덕이 낮고 평평하여 험하거나 뾰족한 모습이 없으며 산허리 위로는 돌이 한 조각도 없어 살기(殺氣)가 적다. 그러므로 남사고의 <십승기>에 유구·마곡사 두 골짜기 사이를 피란할 만한 곳이라 하였다.
마곡사 주차장에서 차를 내려 걸어간다. 십여 년 전과는 완연히 달라진 사하촌의 풍경이 나를 잠시 낯설게 한다. 비를 맞고 있는 울창한 숲 가운데로 난 길을 걸어간다. 마음이 차츰 숲이 가진 싱그러움으로 채워진다. 아마도 예로부터 '봄마곡 추갑사'라 했던 것은 어쩌면 봄꽃보다 태화산을 둘러싼 신록이 그만큼 아름답다는 뜻인지 모른다.
마곡사는 백제 의자 왕 때 신라 사람인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정확한 창건 연대는 전하지 않는다. 고려 중기 보조국사 지눌이 중창하였다고 한다. 가장 먼저 나그네를 반기는 것은 해탈문과 천왕문이다. 천왕문 왼쪽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간다. 영산전과 태화선원과 흥성루라는 강당이 있고 그 바로 옆에 명부전이 있다. 이곳이 바로 마곡사의 태자리인 남원 영역이다.
처음 이곳에서 마곡사가 생겨났지만 가람의 규모가 점점 커지자 확장할 수 있는 평지가 있는 북원으로 확대돼 나간 것이다. 그렇게 마곡사는 개울을 사이에 두고 자연스럽게 남원과 북원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러나 해탈문과 천왕문은 남원 영역에 자리한 영산전 등과는 직각으로 놓여 북원 영역을 바라보고 있다.
이것은 이 두 개의 건축이 비록 위치적으로는 남원에 가깝지만 실질적으론 북원에 속한 건물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마곡사는 마음을 두 번 씻어야만 닿을 수 있는 절이다. 처음엔 남원 영역에서 씻고 다리를 건너기 전에 다시 한 번 씻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