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전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 맨 왼쪽이 이지선씨의 모습이다.이지선
그의 나이 어느덧 서른. 힘겨움으로 점철된 20대를 벗어나 이제 가정을 꾸리고 한 남자의 아내로서 또 한 아이의 엄마로서 준비하는 시기이다. 궁금하기 만한 그의 이상형에 대해 살짝 물어 보았다.
"이상형이요? 이상형에 대한 기도를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구체적으로 기도하다가 얼마 전에 3개로 줄였거든요. 어떤 분이 그러시던데 3개로 줄이면 때가 되고 준비가 된 거라고 그러시더라구요(웃음).
음, 첫번째는 7:3정도로 저를 더 좋아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이것이 아름다운 황금비율이 아닌가 싶어요. 두 번째로는 무슨 일을 하든지 사역자라는 마인드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아무리 좋은 직업을 가졌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언제든 선교사나 목사로 헌신할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리고 마지막으로 착하고 온유한 사람이 좋아요. 저희 아버지가 그러시거든요. 누군가 분노를 터트리면 잘 감당이 안되더라구요. 김동호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말 통하는 사람이었으면 해요."
이로써 나는 이지선씨의 이상형이 아님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이지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화상'이고, 아마 이 때문에 그는 숱하게 화상과 관련한 질문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화상 치료라는 게 보통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책을 통해서도 감정이 격했던 부분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과 갈망했던 것에 대해 넌지시 물어보았다.
"잊었어요. 부정적인 감정이 치유됐어요. 기억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거든요. 아, 하나 생각이 나네요. 화상 피부이식 수술 때 살이 매끈하게 붙으라고 옷을 입어요. 그 당시에는 별 소용이 없어 보이고 힘들어서 안 입었는데 다른 환자들이 그 옷을 꾸준히 입고 조금씩 변화되는 모습을 봤어요. 그 때 저도 참았다면 지금보다 더 좋아질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갈급했던 거라면, 글쎄요. 평범한 생활? 젓가락질이라든가 친구들이 집으로 오지 않고 밖에 나가서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회사 다니고 퇴근하고, 시장에 가서 사람들이 저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 등 지극히 평범한 거에 대한 생각들을 많이 했죠.
그리고 수술 중에 이런 점들을 느꼈어요. 비록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저를 대하는 병원 의료진의 태도에서 안 좋은 기억이 있었어요. 사실 그 때가 힘들더라구요. 수술실에선 정말 완전히 혼자가 되는 시간이에요. 그런데 정말 외로운 그 순간, 친구나 엄마조차도 들어올 수 없을 때에 예수님이 대신 내 손을 잡아주셨어요."
그의 말을 더 이상 듣지 않아도 얼마나 길고 어두운 인내와 시련의 시간을 견뎌냈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대중에게 자신을 알리고자 특별해지고 싶은 요즘 시대에 그는 도리어 평범해지기를 진심으로 원했다. 어쩌면 그것은 장애를 가진 모든 이들의 심정을 대변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