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 노조 단식농성장.시사저널 노조
지난 6월 17일, 정부의 취재지원 선진화 시스템 문제를 다룬 '노무현 대통령 언론인과의 대화'가 있었습니다.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도 인터넷신문협회장 자격으로 참석했었는데, 이 토론회를 보면서 대통령이나 언론단체 대표들이나 참 '한갓지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파업기자 입장에서 보면 그랬습니다.
비유하자면, 임기를 반년 정도 밖에 남겨놓지 않은 망해가는 명나라(노무현 정부)와 시급한 국방(언론자유) 문제는 팽개친 조선 사대부들이 공허한 고담준론을 즐기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날은 시사저널 기자들이 청나라(삼성)의 기사 삭제 침입을 받고, '펜은 돈보다 강하다'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농성하기 시작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 무의미한 대화를 보면서 제가 오직 하나 관심을 가졌던 것은 우리 <시사저널> 문제가 회자되느냐 마느냐하는 것이었습니다. 대화에 참석한 패널 5명 중에 2명(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 정일용 기자협회장)이 <시사저널> 사태와 관련해 금창태 사장에게 고소당했고 다른 2명(이준희 인터넷기자협회장, 신태섭 민주언론시민연대 대표)도 <시사저널> 문제에 관여해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쉽지만 이준희 회장이 잠깐 언급해주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습니다.
삼성이라는 '칸'으로 대표되는 자본권력의 언론통제 문제가 저는 우리 언론계의 가장 시급한 현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칸에 봉사하는 선봉장 용골대, 금창태 사장 같은 사주(혹은 경영진)의 편집권 간섭으로부터 기자들이 '내적 자유'를 확보하는 것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저에게 기자실을 두느니 마느니 싸우는 기자들의 모습은 나라가 망해가는데 성리학과 양명학을 놓고 싸우는 사대부들의 모습과 그대로 겹쳤습니다.
파업하고 나니 더 바빠졌습니다
<시사저널> 사태 1주년, 그리고 파업 6개월. 참 허겁지겁 살았습니다. 파업은 말 그대로 업을 파한 것인데, 웬일인지 저는 더 바빠졌습니다. 김훈 선생님이 제 주례를 봐주시면서 내린 미션은 '물적 토대를 구축하라'는 것이었는데, 그 미션을 실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파업 기자 중에서 드물게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데, 투쟁과 밥벌이를 함께 하는 것은 예배와 장사를 함께 하는 것만큼이나 부조리한 것이었습니다.
일주일에 7일 동안 일합니다. 새벽 3시 반쯤 일어나서 정치기사들을 샅샅이 훑어봅니다. 그리고는 하나의 컨셉트를 잡아 방송 원고를 작성하고 6시 반쯤 라디오로 정치브리핑을 합니다. 방송을 마치고 7시쯤 자서 9시쯤 다시 일어납니다. 늦은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서면 노조 회의나 집회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회의나 집회를 마치고 다른 사람들이 점심을 먹을 때 다시 신문과 인터넷을 보고 기사를 스크랩합니다. 다시 방송 원고를 쓰고 3시쯤 뉴스브리핑을 합니다. 이 방송을 마치고 남은 노조일을 하거나 신매체에 함께 할 투자자를 만나고 다닙니다. 주말이 돼도 사정은 똑같습니다. 토요일엔 토요일의 방송이 기다리고 있고, 일요일엔 일요일의 방송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얼마 전 장인어른이 큰 수술을 받으시면서 이 다람쥐 쳇바퀴가 더 빨리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장인어른 병 수발을 드느라 자주 병원에 들락거려야 했고 10개월 된 아들놈의 뒤치다꺼리는 온전히 제몫이었습니다. 장인어른은 못난 사위 때문에 받지 않으셔야 할 고통을 받고 계십니다. 금창태 사장한테 그런 전화만 받지 않았더라도 병세가 그렇게 악화되지는 않으셨을텐데…. 정말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고 곧 회복하셨습니다.
이렇게 방송을 하면 3만원(좀 심했다)도 받고 4만원도 받고 5만원도 받고, 운 좋으면 8만원도 받고, 한 시간 정도 입에 단내 나도록 떠들면 10만원도 받고 합니다. 요즘엔 언론고시 관련 학원에서 기자 지망생들을 놓고 언론사 시험에 대비해 가르치는 일도 합니다. 먹고사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헉헉거리며 일주일을 버티며 '그래도 굶어 죽지는 않을 팔잔가 보다'고 자위합니다.
이렇게 밥벌이를 하는 저는 밥벌이를 하느라 지쳤고 따로 밥벌이를 하지 않는 선배들은 배고픔에 지쳤습니다. 정말 많이들 지쳤습니다. 시사저널 사태를 취재하는 기자들이 알면서도 안 쓴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탈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파업기자 23명의 신화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제 22명입니다.
두어 달 전에 1명이 이탈했는데, 저는 그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릅니다. 그가 이탈한 뒤로는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저 안쓰러울 뿐입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너무나 지쳤습니다. 기사 삭제 사건에 한 마디 사과도 하지 않는 금창태 사장에게 지쳤고, 6개월 동안 파업을 하는데도 꿈쩍도 하지 않는 심상기 회장에게 지쳤고, 이들을 위해 제 멱살을 잡고 '죽고 싶냐'고 으르렁거리는 직원들에게 지쳤습니다. 그리고 <시사저널> 사태에 침묵하는 다른 언론사 기자들에게 가장 많이 지쳤습니다. 이제 더 이상 지치기도 지쳤습니다.
<시사저널> 정신 간직한 새매체로 만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