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막에 쓰인 생뚱맞은 문구라니. '우리 출판 살리기 결의대회'. 그럼 남의 출판도 있는거니?시사저널 노조
S형, 잘 있지요? 요즘 제 기분은 장마 전선처럼 저기압과 고기압을 오락가락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다 웃다 하는 거지요. 그렇지만 어제(6월 20일) 오후에는 운 좋게 비 갠 날처럼 내내 환했습니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소위 사측 사람들이 우리 앞에서 '생쇼'를 한 덕입니다. 그들의 생뚱맞은 '무대 소품'을 보며, 그들의 어색한 모습을 사진 찍으며 몇 번이나 싱긋빙긋 웃었는지 모릅니다. 지금부터 어떤 쇼가 있었는지 제 기억을 재생해 보겠습니다.
오후 3시20분. 단식 중인 동료들 옆에 앉아 책장을 넘기고 있는데, 윤무영 기자가 뜻밖의 말을 전했습니다. "사측 사람들이 집회를 해서 자리를 조금 비켜줘야 한대요. 한 5분…."
한 달 간 집회 신고를 해놓고 아무것도 안 하다가, 경찰이 오락가락하니까 집회 시늉을 하는 거라고 했습니다. 그럼 한 번 지켜볼까. 게다가 심 회장 집 앞은 우리가 영원히 찜한 곳이 아니었으므로 짐을 치워주지 뭐.
매트리스와 물통을 막 골목 건너편으로 옮기는데, 누군가 비탈길 위쪽 계단을 가리켰습니다. 그 순간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과 <비열한 거리> 등에서 본 익숙한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7~8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봉고차에서 우르르 내린 것입니다.
재미있게도 그들의 손에는 야구방망이나 쇠파이프가 아니라, 피켓이 들려 있었습니다. 피켓을 들고 쭐레쭐레 계단을 내려오는 그들의 모습은 퍽 우스꽝스러웠습니다. 개중에는 아는 얼굴도 더러 보였습니다. 기자들이 집회를 할 때마다 불편한 얼굴로 쳐다보던 충복들.
심 회장 집 앞에 도착한 열명의 충복은 쭈뼛쭈뼛거리며 현수막을 펴고, 피켓을 치켜 올렸습니다. 생쇼를 보는 기분은 묘했습니다. 우리가 집회를 할 때마다 나타나 불편한 얼굴로 쳐다보던 충복들이 비슷한 행위를 하고 있으니, 온몸이 어지러울 수밖에요. 게다가 현수막에 쓰인 생뚱맞은 문구라니. '우리 출판 살리기 결의대회'. 우리 출판이라고?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명사의 조합. 그럼 남의 출판도 있는 거니?
피켓에 쓰인 문구도 가관이었습니다. '출판은 지식과 정보의 샘, 우리 함께 키웁시다', '함께 만들어가는 출판, 같이 누리는 밝은 미래', '출판은 문화의 상징, 우리 출판 우리가 살리자', '세계를 움직이는 힘, 독서에서 나온다'.
모두 중간이나 어미에 물음표를 붙여야 할 것 같은 구호들. 순간 엉뚱한 상상력이 발동했습니다. '출판을 <시사저널>로 바꾸어본 거지요. 우리 <시사저널> 살리기 결의대회? <시사저널>은 지식과 정보의 샘, 우리 함께 키웁시다? <시사저널>은 문화의 상징, 우리 <시사저널> 우리가 살리자? 후후, 저절로 새어 나오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