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중인 <시사저널> 노조 정희상 위원장과 김은남 사무국장이 심상기 회장 자택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시사저널> 노조
한 여름밤은 결코 짧지 않았습니다. 단식하는 두 사람뿐만 아니라 많은 기자들이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새벽 두 시건 세 시건 간에 문자를 날리면 곧 답장이 왔습니다. 정녀리나 마녕이와 드잡이질을 하다가 서대문경찰서까지 다녀왔던 다섯 명의 기자들은 더더욱 꿈자리가 사나웠습니다.
그래도 6월 19일 아침은 왔습니다. 겨우 9시가 넘었을 뿐인데 북아현동 골목길 아스팔트 바닥은 벌써부터 지글지글입니다. 그 집에 사는 이들의 거친 성정을 말해주는 듯 심술궂은 철조망을 이고 있는 심상기 회장 집 차고 앞에 정희상과 김은남은 앉아 있었습니다.
깊어진 눈빛들... 지난 밤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침은 먹었냐"고 객쩍게 묻자 두 사람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걸립니다. 정희상은 어지간히 모기에 시달렸나 봅니다. 얼마든지 자겠는데 모기가 문제라며 긁적입니다.
이정현이 "정 선배가 차가 올라올 때마다 소스라쳐 깨나더라"고 귀띔합니다. 이정현은 차형석과 함께 밤샘을 하며 두 사람을 보살폈습니다. 새벽에는 골목에서도 차가 질주하기 일쑤입니다. 차가 올라올 때면 소리가 어찌나 사납던지 금세라도 덮쳐들 것만 같은 공포심에 사로잡히게 되더라고 합니다.
서대문경찰서에서 검문용 표지판 두 개를 세워줬고 촛불도 켜놓았지만 안전장치로는 영 미덥지 않습니다.
"인도에는 길거리에서 자다가 차에 치여 팔다리를 잃은 사람이 수두룩하다던데."
안은주가 쓴 책에서 읽은 얘기를 하다가, 입방정을 떠는 것 같아 얼른 입을 닫아버립니다. 그리고는 기자들이 점점 많은 걸 걸고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김은남은 화장실이 없어 어지간히 골탕을 먹었는가 봅니다. 저녁 6시에 골목 아래 동사무소가 문을 닫아 버리면 김은남은 그저 참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었다고 합니다. 보다 못한 서대문경찰서 형사가 민가의 문을 두드려 용변을 볼 수 있게 도와줬다고 하는군요.
심상기 회장 집에는 사람이 들지도 나지도 않습니다. 밤에 안 쪽 깊숙한 곳에서 불빛이 새어나왔다는 걸 보면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무슨 폭력배도 아니고 자기가 운영하는 회사의 기자들이 찾아왔는데 가족까지 피신시키는 걸 보면서 가진 자들의 마음 씀씀이는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 기왕 집을 비워놓다시피 할 요량이면 화장실이라도 개방하든지.
문정현 신부는 길거리 천막에서 밤샘 농성을 해봐야만 세상을 알 수 있다고 했었는데 우리 기자들은 지난밤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침에 만난 그들의 눈빛은 분명 예전보다 깊었습니다.
악당처럼 변해버린 얼굴, 스스로 알까요?
오전 10시가 넘어 한창 집회를 하는 중에 처남인 광고국장이 모는 차를 타고 갑자기 경와니 전무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정희상을 보고 대뜸 "아직도 쌩쌩하네"라고 빈정대 백승기의 뚜껑이 열리게 만들었습니다.
백승기와 대거리를 하는 그의 몰골은 처참해보였습니다. 몸과 정신이 모두 피폐해졌다는 걸 한 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왜 저렇게 됐어. 완전히 병들은 낙지 대가리 같네."
그를 오래 전부터 알던 고참 기자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나온 말입니다. 실제로 그 자리에 계셨다면 이것이 얼마나 적절한 표현인지 아셨을 겁니다.
생각과 행동이 아름답지 못하면 그대로 얼굴에 나타나는 법입니다. 경와니뿐만 아니라 정녀리나 마녕이의 얼굴도 악당처럼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과연 자기 얼굴이 그렇게 변했다는 걸 알까요.
경와니를 비롯해 아침부터 서울문화사 관계자들로 심 회장 집 앞은 북적댔는데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 노조가 얼마나 오래 심 회장을 괴롭히려고 할 것인가였습니다. 그들은 심 회장이 집에도 못 들어오게 된 것이 송구스러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시사저널> 사태가 회사 전체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염두에도 없고 오로지 심 회장의 심기만을 경호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언제부턴가 심 회장 주변에는 돌쇠들만 넘쳐나게 됐습니다. 경와니나 민모시기 등 면면을 보면 부지중 웃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연 매출액 800억이 넘는다고 자랑하는 회사의 중추에 '똘마니와 그 똘마니들'만 득시글댑니다.
'우물 안의 거물'인 그들이 경인방송을 인수하겠다고 돌아다녔을 때는 코미디가 따로 없었습니다. 만에 하나 노사간에 타협을 해 회사로 돌아간다 해도 그들과 다시 얼굴 맞대고 일할 생각을 하면 기자들은 끔찍합니다.
회사의 그 머리 나쁜 친구들이 오늘 제대로 임자를 만났습니다. <시사저널> 노조의 1주년 투쟁을 지원 나온 언론노조의 탁종렬 국장. '인간의 도리가 뭔지 생각하며 살라'는 그의 일갈은 용역 깡패들처럼 계단에 죽치고 앉았던 그들의 귀에 정확하고 예리하게 파고들었습니다. 그는 쪽 빨아놓은 대추씨처럼 생긴 서울문화사의 풍년이 과장보다도 훨씬 '깊이 있게' 육두문자를 썼습니다.
피뢰침에 매달린 노동자 끌어내리라던 금창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