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직후 병실에 옮겨진 상태.최승주
다음은 지난 5월 28일부터 6월 6일까지 신장 이식 수술을 위해 서울 아산병원에 열흘간 입원했던 기간에 쓴 일지에다 첨삭한 글이다.
5월 29일 입원 둘째 날 CT촬영 때문에 어제(28일) 밤부터 금식했다. CT촬영을 위해 조영제가 투입되면서 온 몸이 순식간에 뜨거워졌다. 간호사가 사전 설명한 대로 심장이 멈추는 것 같은 고통이 있었다. 다행히도 그러함은 오래 가지 않았다. 촬영은 20여분만에 끝난 것 같았다. CT촬영을 시작으로 신장 이식 절차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 같다.
병원에 오니 상상으로 엄습해오는 것들이 있다. 수술하는 장면 속에서 피와 장기의 엉킴이었다. 떼어낸 신장을 갈비뼈 틈새로 빼내 다른 이에게 붙여주는 것이 신장이식 수술이라는 것을 언뜻 알았기 때문인가 보다. 같은 병실 옆 침대의 환자(형에게 간을 이식했다는 50대 기증자)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만만치 않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위급한 앰뷸런스 실려, 들 것에 의해 병원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걸어 들어와 입원 했듯이 평안한 마음과 건강한 몸으로 귀가했으면 좋겠다.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굴뚝같다.
5월 30일 입원 셋째 날 홀가분하다. 휴가 온 기분이랄까? 병원 도서실(교양실이라고 함)에서 허영만의 <사랑해>, 다니구치 지로의 <열네살>, 김동화의 <엄마> 등의 만화를 빌려보면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밥도 아주 잘 먹었다. 입이 궁금해 양갱과 과자, 요플레 등을 사다 먹을 정도로 식성은 좋았고 마음은 편했다. 신장 기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친 몸에 휴식을 충전하기 위해 입원한 것 같았다.
이날 오후 1시께 병실을 동관 83동 39호실로 옮겼다. 수술을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이 시작된 것이다. 저녁이 되면서 상황이 바빠졌다. 처치실에 불려간 나는 시트에 눕혀졌고 수술 부위에 대한 면도와 관장이 이뤄졌다. 그리고 피 검사가 두 차례 있었다. 하나의 피 검사는 수술 과정에서 있을지 모를 과다 출혈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밤 9시 40분쯤 수술·마취 동의서 작성을 위한 설명이 있었다. 젊은 의사는 "환자의 신장 두 개 중 기능이 좋은 것은 놔두고 덜 좋은 것을 떼어내는 것이 원칙"이라면서 "환자의 신장은 양쪽이 비슷한 것으로 나타나 혈관이 긴 왼쪽 신장이 수술하기 쉬워 그쪽을 떼어내기로 했으며 이를 위해 15cm(수술 이후에 보니 20cm 가량이었음) 가량 배를 가를 것"이라고 했다.
이와 함께 "신장 하나를 떼어주면 두 개의 신장이 하던 일을 혼자 남은 신장이 해야 됨에 따라 급성신부전 증세가 있을 수도 있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신장이 손상돼선 안 되므로 신장이 부상당하면 안 된다, 금연 등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수술 과정에서 흉막, 비장, 장 등이 손상을 입을 수도 있는데 그럴 경우 기증자가 환자가 될 수도 있다"는 등 만일의 가능성과 주의사항에 대해 덧붙여 설명했다.
두려움을 주는 것은 실체가 아니라 그 실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사용되어지는 언어였다. 한가함과 여유로움은 사라지고 긴장과 두려움이 엄습했다. 수술 과정은 이렇다고 했다. 내일(31일) 오전 7시 15분 병실에서 수술실로 이동, 8시 15분께 마취, 8시 30분께 수술 시작, 12시경 수술완료. 신장 받게 되는 분은 광주에 거주하는 79년생 청년이라고 한다. 아내는 귀가했고 병실에 혼자 남아 수술 전야의 심경을 적었다.
신장 기증으로 인해 아내와 자식, 목사님, 교인 등에게 과분한 기도와 칭송과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너무 고통스러우면 후회할 수도 있다. 고통은 나의 허약한 믿음을 흔들 수도 있다. 서원과 신장 기증 이행이 거짓되거나 우습게 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나약한 인간은 결코 선할 수 없으며, 생명과 사랑을 온전히 나누기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과연 칭찬받을 만한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