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사립학교법 개정안 표결처리를 놓고 열린우리당 의원들과 한나라당 의원들이 격렬한 몸싸움을 하는 가운데, 이방호 한나라당 의원등이 김원기 의장에게 서류를 던지고 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정치
새로운 정치가 새로운 사람과 세력, 새로운 정책, 새로운 정치방식에 의해 수행되는 것이라고 할 때 이것은 정치에 대한 관점의 전환, 발상의 전환을 요구한다. 생각이 바뀌지 않고는 새로운 정치가 시작될 수 없으며, 기존의 지배적 기득권 구조를 포함한 낡은 가치와 정면으로 대결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정치를 실현할 수 없다.
새로운 정치는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이 주인 되는 정치이다. 새로운 정치는 재벌 위주의 정치가 아니라 중소기업 중심의 정치이며, 서울과 대도시 중심의 정치가 아니라 모든 지역을 고르게 발전시키는 정치이며, 자본가만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자본가와 노동자를 포용하는 정치이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별하지 않는 정치여야 한다.
새로운 정치란 현재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이 더 잘 살게 되는 정치가 아니라 고단한 삶에 허덕이고 있는 다수 국민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정치를 말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기득권 구조를 옹호하는 낡은 사고방식과 과감하게 결별하여야 한다.
특별히, 이 문제는 최근 심화되고 있는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하지 않고서는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도시와 농촌의 양극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양극화로 표현되는 3대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정치를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거니와 사회적 양극화의 3대 과제는 단순히 정책 변화로 실현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발상의 전환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는 문제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새로운 정치, 그 실패의 경험들
우리가 새로운 정치를 처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정치는 6월민주항쟁 이후 여야간 대립구도 아래서 끊임없이 제기되었던 주제이다. 여당도 새로운 정치를 말하고 야당도 새로운 정치를 말하며, 기득권 세력까지도 끊임없이 새로운 정치의 필요성을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새로운 정치가 아니었다.
대통령이 바뀌고, 여당이 바뀌고, 기득권 구조 하에서 단순히 지배자가 바뀌는 정치를 새로운 정치라고 할 수는 없다. 지난 15년 사이에 대통령이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으로 바뀌었으며, 그 과정에서 정책의 변경이나 정치방식의 변화가 수반된 것도 사실이다. 집권 정당도 교체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정치는 시작되지 못했다. 서로가 세력교체의 차원에서 새로운 정치를 말했을 뿐 진정 국민의 관점에서 새로운 정치를 말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해방 후 한국정치사에서 새로운 정치의 기회가 몇 차례 주어진 바 있다. 4월혁명으로 이승만 독재가 붕괴되고 자유당에서 민주당 정권으로 교체되면서 새로운 정치의 기회를 맞이했다. 그러나 자유당을 대체한 민주당, 이승만을 대체한 장면 정부는 과거와 구별되지 않는 정치, 집권세력만 바뀐 정치에 불과했다. 권력 수준의 변화가 정치적 변화 혹은 사회경제적 변화를 동반하지 못한 것이다. 4월혁명 후 민주당에서 신민당이 분화되어 나오는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구태와 혼란은 과거와 전혀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박정희의 군사쿠데타는 역발상의 관점에서 새로운 정치의 기회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군인정치가 새로운 정치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면 그것은 지극히 소박한 감상주의자의 소망이거나 군인도 모르고 정치도 모르는 문외한의 근거 없는 기대였을 뿐이다. 그 결과는 유신독재와 전두환 신군부의 등장과 광주학살을 통해서 입증되었다.
87년 6월민주항쟁으로 마련된 대통령직선제의 부활과 대통령선거 및 그 이후의 일련의 과정은 새로운 정치를 위한 한국사회의 가장 중요한 기회였다. 그러나 새로운 정치를 실현할 절호의 기회는 양김을 포함한 정치세력의 몰역사적인 선택으로 인해 소진되고 말았다.
양김 분열로 인해 군사정권이 합법적으로 재집권하게 되면서 구세력에 대한 청산이 지연된 이유 때문에, 그 후 양김이 각각 구세력과 연합한 집권전략을 추구함으로써 민주화와 개혁이 왜곡된 이유 때문에, 재야세력이 낡은 정치에 편입되면서 새로운 정치를 실험할 기회를 포기한 이유 때문에, 그리고 이러한 파행적인 민주화 과정으로 인해 새로운 이념과 정책으로 무장한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이 지연된 이유 때문에 결국 새로운 정치의 실현은 좌절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