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금선
김용택, 좋아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
김용택이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이력서 식으로만 기술하자면, 1948년 전북 임실 덕치면 진메마을에서 출생하여 순창농림고등학교를 나와 선생시험을 봐서 초등학교 선생을 시작해 1982년 '섬진강1'이라는 시를 세상에 발표하면서부터 세상 사람들한테 시인소리도 들으면서 살게 되었고, 지금도 자신이 다녔던 덕치초등학교에서 선생을 하면서 자신이 가르쳤던 아이들의(물론 지금은 어른이 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시를 쓰면서, 세상에 화를 내면서, 세상을 사랑하면서, 세상을 원망하면서, 세상을 말도 못하게 불쌍하게 생각하면서, 아파하면서, 즐거워하면서,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분명한 게 아니라 진짜 그렇다. 그런데도 나는 그를 말하기가 벅차다. 이것은 순전히 필자 개인의 감정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김용택이라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한,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다. 세상에 김용택 같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고 누구를 좋아한단 말인가?
나는 지금까지 내가 읽은 산문 중에 김용택의 산문 만큼 재미지게 읽은 산문이 없다. 시인들이 쓰는 산문들을 나는 그리 재미있게, 속도감 있게, 실감나게 읽지 못했다. 그러나 김용택의 산문들은 글에 그려지는 상황이 선명하다. 입말이 살아 있다. 산문에 꽹과리 치는 장면이 나오면 그날의 정황이 환히 떠오른다. 그의 글은 많은 부분, 아니 거의가 다 글이라기보다 그림에 가깝다. 그의 모든 글에서 나는 저절로 떠오르는 그림을 본다.
1948년생이니 이제 김용택 나이 육십.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나이다. 실제로 그를 직접 보면, 특히 덕치초등학교 2학년 1반 아이들하고 덕치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축구하고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누가 2학년이고 누가 6학년(육십)인지 구별하기가 매우 힘들다.
더구나 그는 전주의 안모 시인, 김모 소설가와 나란히 '반코트가 롱코트'되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다. 고만고만한 아이들 틈 속에 조금 더 큰 60 먹은 사람이 그 특유의 소리로 웃기라도 하면 참 기가 막힌다(?).
근 15년여 전에도 나는 그를 보러 덕치초등학교에 간 적이 있다. 그때도 그는 처음 보는 내게 "선옥아"라고 불러줬다. 누가, 더군다나 처음 보는 사람이 그렇게 다정하게, 그렇게 정이 뚝뚝 듣게 댓바람에 이름을 불러준 사람은 내 인생에 아마 김용택이 유일하리라. 시골의 정 많은 사람들이 항용 그렇듯이 그는 늘 보자마자, "밥 묵었냐?"라고 묻는다. 늘 밥 묵으러 가자고 한다.
그놈의 환장할 정 때문에...
그는 왜 늘 세상 돌아가는 꼴에 속상해 하는가. 아파서 위장병까지 나곤 하는가. 그것은 그가 정이 많기 때문이리라. 그놈의 환장할 정 때문에 그는 오늘도 조용한 동네를 가로지르는 무시무시한 시멘트 도로에 분노하고 시멘트 도로 밑에 사는 늙고 가난한 사람들이 불쌍해 눈물 흘리고 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이놈의 무정한 세상에 그도 무정해 버리면 속편하게 살 수도 있을 터인데 그놈의 정 때문에….
덕치초등학교 2학년 1반 교실에 가면, 놀라운 풍경이 펼쳐져 있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본 교실 풍경 중 그 교실만큼 아름다운 교실을 본 적이 없다. 그 교실에 사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만큼 사람 마음을 하염없이 좋게 해주는 그림을 본 적이 없다. 그림을 잘 그리기도 참 잘 그렸다. 그림이 하도 욕심나 훔치고 싶을 만큼 잘 그렸다. 그림지도를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무조건 찐허게 칠해라"라고만 한단다. 나는 그가 학교를 그만두더라도 그 교실만큼은 영구 보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김용택은 시만 썼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들게 살았을 것 같다. 시만 썼으면 어쩌면 그 여린 성정에서 나오는 강함으로 더 많이 망가졌을 것도 같다. 그가 쓴 산문 중에 '불타는 감나무'라는 것이 있다. 그 글에는 그가 한창 젊었던 시절(그리고 물론 그는 지금도 누구 못지않게 젊다!), 말하자면 1970년대의 '논두렁 깡패' 시절 그가 살았던, '출구없는 청춘'들의 전라도 농촌판이 고스란히 그려져 있다.
일명 '논두렁 깡패' 중의 일원이었던 그. 농촌드라마들을 보면 농촌사람들은 다 뭔가 좀 모자라고 웃기기만 하는 사람들로 그려지기 십상이지만, 사실 그 시대나 이 시대나 밤새껏 술 마시고 맥없는 감나무라도 불태워야만 하는 고뇌가, 그 우수가, 농촌이라고 왜 없겠는가.
그러나 그에게는 또 고뇌와 우수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순창읍 내에서 자취하며 쌀을 모아 팔아 영화를 보던 감수성 예민한 소년 김용택, 오리를 키우다 쫄딱 망해먹고 모자란 차비를 들고 무조건 대전행 기차를 타고 친척집에 갔다가 거기서도 또 영화관을 갔댔지.
바로 그것이다. 그에게는 대책 없다 싶을 정도의 낙천성이 있다. 그 낙천성이란, 다름 아닌 흙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의 심성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낙천성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고 보면 영락없이 그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닮은 그 낭랑한, 사람을 단박에 무장해제시키고도 남을 힘을 가진 그 웃음소리 또한 그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낙천성에서 나오는 소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