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길 교육의 길> 표지한길사
이오덕 선생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한동안 건강이 회복되는 듯할 때 선생은 여러 가지 구상을 나에게 말씀하기도 했다. 나는 선생에게 회고록 또는 자서전 집필을 권유했고 선생도 '삶의 문학'으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써보겠다고 했다.
나는 특히 70년대 80년대의 일기를 정리하시라고 했고, 선생도 그러자고 했다. 이번에 돌아가신 안동의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과 주고받은 편지를 넘겨주어 우리는 그것을 진행하기도 했다. 권정생 선생이 동의하지 않아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한 시대 어린이 문학운동과 교육운동의 두 기둥이었던 두 분의 우정이 묻어있는 편지글들을 우리는 갖고 있다. 두 분이 주고받는 편지란 참으로 소박하고 감동적이다.
이오덕 선생은 건강이 좋지 않은 속에서도 중요한 작업을 해냄으로써 젊은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2001년 5월에는 <농사꾼 아이들의 노래 : 권태응 동요이야기>를 소년한길에서 펴냈다.
1918년 충주에서 태어나 1951년에 33세로 요절한 권태응, 1945년부터 1950년까지의 여섯해 동안 "마치 자신이 동요를 쓰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처럼 온 마음과 힘을 다해", "목숨을 앗아가려는 병마와 싸우면서" 동요만을 써낸 권태응의 문학세계를 428쪽이나 되는 분량으로 논구해내는 작업을 선생은 해냈다.
2002년 7월에는 <문학의 길 교육의 길>과 <어린이책 이야기>를 동시에 소년한길에서 펴냈다. 선생의 강건한 '정신'을 우리는 읽을 수 있다. 나는 우리 출판사가 선생의 마지막 '걸작'들을 펴내게 된 것을 긍지로 삼고 있다. 그러나 선생님과 의논한 여러 기획들이 이뤄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선생의 여러 구상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움과 슬픔을 억누를 수가 없다.
산 속의 한 마리 새가 되어
1925년 경북 청송에서 농사짓는 집안에서 태어난 선생은 2003년 8월 25일 새벽, 향년 78세로 충청북도 충주시 신내면 무너미마을 고든박골에서 돌아가셨다. 선생은 돌아가시기 전에 마을 뒷산에 오르곤 했다. 뒷산 양지바른 곳에서 설핏 잠이 들었는데, 그때 선생은 손수건에 토끼똥 몇 알을 소담스럽게 싸서 손에 쥐고 계셨다. 선생은 "토끼똥이 요렇게 아름답지" 했다고 아들 이정우씨가 나에게 말했다. 선생은 바로 그 뒷산에 누워계신다.
이오덕 선생은 풀·꽃·나무·흙·바람, 그리고 무엇보다 어린이를 사랑했다. 그런 문학과 교육을 위해, 그런 문학과 교육을 하는 참문학인·참교육자들과 함께 생각하고 연구하고 글을 쓰고 실천했다.
선생은 형식을 꾸미고, 일부러 하는 것을 한사코 마다했다. 장례를 조촐하게 치르라는 유언을 남기고, 번다하고 화려하게 칭송할까봐 비명까지 미리 정해준 선생이야말로 자연스러움과 소박함의 철학을 몸으로 구현한 우리시대의 참스승이었다.
돌아가시기 직전에 아들 이정우씨에게 유언처럼 한 말씀을 남겼다고 한다. 젊은 시절 한 권의 책을 빌렸는데, 나중에 그 책을 사기로 하고 책값의 절반을 치렀지만, 나머지는 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는 것이었다.
한길사는 2005년 선생의 서거 2주년을 맞아 선생의 시집 <무너미마을 느티나무 아래서>를 펴냈다.
나는 올해가 일흔이 꽉 찬 나이인데도
아직도 어린애 같은 꿈을 꾸며 살아간다
산속에 가서 한 포기 풀같이 살아가는 꿈
산속에 가서 한 마리 새같이 살아가는 꿈
간밤에도 자리에 누워
가슴 두근거리며 잠을 못 잤다
아침 햇빛을 받아 온몸을 떠는 풀이 되어
저녁노을 바라보며 나뭇가지에 눈감고 앉아 있는
한 마리 새가 되어
내가 바라는 것은 그저 하늘과 구름
해와 달
별과 바람
이른봄 담 밑에 돋아나는 조그만 풀싹
초가을 도랑가에 핀 하늘빛 달개비꽃
풀숲에 울어대는 벌레 소리
지금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 그 많은 형제들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
나는 뜬눈으로
이 밤에도 꿈을 꾼다
선생이 1995년 4월 30일 밤에 쓴 '나의 꿈' 전문이다. 시다 아니다를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선생의 사상과 정서를 헤아리게 한다. 슬픔 또는 해방 같은 것이다. 선생이 돌아가시기 전에 나는 KBS의 유동종 PD와 의논했다. 선생의 모습을 담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이오덕 선생을 존경하는 유 PD가 그 작업을 시작했는데, 결국 선생을 추모하는 특별프로그램으로 방송되었다.
돌이켜보면 한 출판인으로서 나는 이오덕 선생과의 25년여를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수많은 책을 기획했다. 아니 지금도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한 권의 책을 만들어 세상에 존재시키는 일이란 아름답고도 존엄하다는 체험을 늘 하게 되지만, 선생과 더불어 교육과 어린이, 그리고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날은 늘 밤이 깊었다. 때로는 긴 시간 전화로 이런저런 생각을 주고받았다. 지금도 불현듯 이오덕 선생에게 전화를 걸어야지 하는 생각이 나곤 한다. 이오덕은 나와 우리 모두의 가슴에 여전히 살아 있다!
아이들을 하늘처럼 섬기는 교실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한길사,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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