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이 논에 들어가 모를 내는 모습김이하
지난 해 금강산과 일본 도쿄 등에서 이 땅의 상처와 상생을 도모하기 위한 다각적인 시각으로 문학행사를 주최하여 많은 관심과 동감을 불러일으킨 바 있는 한국문학평화포럼(이하 포럼)이 2007년 5월 19일 첫 행사로 생명, 평화를 노래하는 문인이 마을 주민들과 함께하는 손모내기 행사를 열었다.
'논에 시를 모시다'라는 매혹적인 제목이 걸린 행사는 남강강변으로 주거를 옮긴 포럼의 홍일선 사무총장 논에서 열렸다. 경기도 여주군 점동면 도리는 풍광이 뛰어난 생태마을이다. 이곳의 전 이장이었던 이경희씨는 이곳에 녹색체험마을을 만들어 많은 관심을 끌었던 사람으로 사실 홍총장의 이주에 적극적인 도움과 조언을 해주었다고 한다.
이미 써레질을 해놓은 논 네 마지기에서 열린 이날 행사에는 아흔이 넘으신 노구를 이끌고 참가한 이기형 시인, 송영 소설가, 양성우 시인 등 문인 30여명과 여주군 농촌기술센터 장해중 소장, 도리 이장을 비롯한 주민들이 모여 오우열 시인의 땅과 강과 산을 위한 고유제를 시작으로 막을 올렸다.
한미 FTA 이후 우리 농업이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열린 이 행사는 오천년 농토를 지켜온 우리 농민들의 마음을 문학의 힘과 시의 정서로 따듯하게 위무하고, 농업이 지닌 생명과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포럼 소속 시인, 작가 등이 모여 치룬 행사여서 더욱 뜻이 깊다고 할 수 있다.
농업이 목숨이었던 우리의 농민들에게 경제적 이유와 효율의 가치만이 강조되어 광풍처럼 사그러져야 하는 현실에서 기계화된 농기구를 다 버리고 수천 년을 이어 온 손모내기의 방법을 택한 것은 큰 상징성과 역설의 의미를 지닌다.
더구나 모를 내면서 논에 시를 모신다는 매혹적인 발상은 농업이 황폐화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인으로서 우리 농업의 심각한 현실을 깨닫고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적 모색까지도 함축하는 큰 의미의 상상력이 아니겠는가.
고유제에 이어 양성우 시인의 첫 시낭송을 듣고 막걸리 한 사발씩 마신 시인들은 바로 논에 들어갔다. 다소 심각하고 비장감마저 감돌던 결의 찬 모심기는 북장단에 걸쭉한 사설을 뽑아내는 오우열 시인의 모내기 소리에 금방 흥겨운 신명이 넘쳤다. “여보시오 농부님네!” 하면 “어이!” 하며 바로 받아서 덕담이 오가고 상주 모심기 소리를 빌어 해학과 웃음이 넘치는 모심기가 이어졌다.
손으로 모를 심어보지 못한 시인도 있었고 몇 십 년 만에 해보는 사람도 있었으나 다섯 줄 쯤 넘어가니 다 이력이 붙어 손발이 척척 맞았으니 이것 또한 민족의 유전적 현상은 아닐까 하는 우스운 발상이 들 정도였다. “아이구 허리야” 하니 북장단은 바로 ” 다섯 줄만 더 가고 쉬세“ 로 받아 줄을 넘기는데 그게 열 다섯줄로 이어졌다.
온몸에 흙이 묻어 엉망이 된 손으로 막걸리를 받고 김치전을 입에 넣는 모습이 아주 그럴싸 했다. 홍 총장의 의하면 마지기당 이앙기로 모를 낼 경우 3만원 정도를 받는다고 하니 네 마지기면 십여만 원이면 족할 모내기 행사에 음식값만 30만원이 들어갔다고 엄살을 했으니 웃지못할 현실이었다. 이 말에 누군가 ‘여기서 나는 쌀은 가마에 백만 원은 받아야 족하다’ 하여 다 웃고 말았다.
쌀이 웬수가 되고 천덕꾸러기 된
냄새나는 역설의 시대에
남은 신명 모두어 시를 모신다
질긴 생명을 받든다.
(중략)
오늘 심은 이 모가 자라, 이 시가 자라
우리 나약한 몸뚱아리의 거름이 되리
다시 일어나야 할,
농부의 튼실한 장딴지가 되리!
-졸시 '모가 자라고 시가 자라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