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이 지난 2003년 9월 26일 이라크 발라드의 한 가정집을 수색해 이라크 저항세력 혐의자를 붙잡아가는 모습.미 국방부
조씨 범행, 국가폭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미국 문화 영향 받았을 것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 보면 범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조승희군이 바로 미국적 '마카로니' 폭력 문화의 피해자인지도 모른다. 한인이라는 신분은 어떻게 보면 이번 사건의 주범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어려서 부모를 따라 이민 온 조군은 한국적 가치체계의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고 의사소통이 단절된 고립 속에서 영화, TV 및 게임에서 폭력이 영웅시되는 미국 퇴폐문화를 먹고 자랐다. 즉 조군은 미국 마카로니 웨스턴(macaroni western, 총잡이 영화 혹은 문화)의 산물이며, 조군이 어느 특정 국적의 학생이라는 점은 우연일 뿐이다.
오늘 우리가 처한 왜곡된 문명을 직시하자. 평화수호의 1차적 책임을 지고 있는 미군을 수십만명씩 동원해 9·11테러와 무관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수십만명의 무고한 인명을 대량학살하고 있는 국가폭력이 비판 없이 일상으로 수용되는 사회 현실과 버지니아텍의 총기사건을 전혀 별개의 사건으로 봐선 안 된다. 폭력을 영웅시하는 환경에서 조군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자신을 고립시킨 주변에 대한 복수에 어떤 편향적 가치를 부여하면서 희희락락했을 것이다.
이는 기독교 문화에서 이교도에 대한 폭력을 정의로 인식하고 있는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만일 이라크인과 아프가니스탄인이 이교도가 아니고 기독교인이라면, 그들을 무차별적으로 대량학살하는 현실을 기독교가 과연 묵과할까. 이 점에서는 여느 종교도 마찬가지다. 난 이 같은 가치편향이 이번 총기사건의 주범이라고 보고 싶다.
그리고 미국 정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로비그룹인 총기 및 무기생산업체에 대한 통제력 부재가 이번 사건의 공범이다. 아울러 캠퍼스 경찰은 첫 사건이 발생했을 때 폭력을 수습했어야 했다.
이번 캠퍼스 총기난사 사건은 가치체계가 무너진 사회 환경이 '트리거'(trigger, 촉발 기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미국에 대한 선망으로 미국 퇴폐문화에 대한 분별력을 잃고 마카로니 웨스턴의 폭력문화에 빠졌을 때, 그리고 한 예로 부자 교회가 무절제한 팽창주의에 빠져 좋은 프로그램을 도입해 가난한 교회의 교인을 유인해서 선교를 잘 하는 교회라고 인식될 만큼 가치체계가 전도된 현 우리 한인사회의 굴절된 물량주의는 제 2, 제 3의 조승희를 얼마든지 생산해 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총기난사 단독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조승희군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미국 사회의 백인우월주의나 인종차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조군의 메모에서 그런 잠재의식의 실마리가 보인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이 우리 한인 이민사회가 가치체계를 확립하는 자성의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동포 이민자들이 피땀 흘려 건설한 '로마'가 지금 불타고 있다. 우리가 새 삶의 터전을 찾아 태평양을 건너와서 성실하게 노력해 일군 오늘날 모습에서 실낙원의 유민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아니 미래를 향해 웅비해온 우리 동포들이 끝없이 추락하는 신천옹(信天翁, 알바트로스)의 비운을 맞지 않으려면 우리 모두 합심해 진화작업에 나서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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