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대학교 교수가 되기 전까지 자신의 직업을 '강사업'이라고 적기도 했던 박현채 선생. 강의할 때마다 그가 보여주는 치열함과 열정은 늘 강의실을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1985년 제1회 한길역사강좌 때의 모습.한길사
80년대 전 기간을 통해 사실 '책'은 놀라운 위력을 발휘했다. 동시대인들을 개안시키는 사상과 이론이자 집단적 행동과 조직을 가능하게 하는 위대한 문명이었다. 마이크로미디어인 출판은 기성의 신문·방송 등 매크로미디어가 해내지 못하는 기능을 역동적으로 해냈다.
출판인·편집자를 아무리 잡아넣고 판금을 시켜도 책의 힘, 책의 문명을 더 이상 막을 수 없었다. 이미 복제·복사기술이 일상화되고 있는 새로운 문명적 상황에서 권력에 의한 정신과 사상과 이론의 판금·구금은 오히려 그것들의 힘과 정신과 사상을 키워주었다.
출판인·편집자들은 정부가 허가해주지 않는 잡지를 펴낼 수 없게 되자 책과 잡지를 통합한 '무크'라는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냈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기관지 격인 <실천문학>을 효시로 다양한 장르에서 무크지가 간행되었는데, 한길사는 1983년에 무크지 <한국사연구>를 기획하여 한국근현대사·한국사회·민족문제 등을 집중 규명한다. 이어 <제3세계연구>를 기획한다. 1년에 한 번씩 펴내는 <한국사회연구>는 전5권까지 간행되는데 박현채 선생은 제1권에서 '해방전후 민족경제의 성격'을, 1985년 제3권에서는 '분단 40년의 한국자본주의와 농업'을 발표한다.
민음사 박맹호, 지식산업사 김경희, 창작과비평사 김윤수, 문학과지성사 김병익, 열화당 이기웅, 현암사 조근태, 까치 박종만, 한길사 김언호 등 출판인들이 주축이 되어 양서진흥을 도모하는 '오늘의 책' 선정운동을 인문사회과학자들과 연대하여 펼쳤다.
이 운동의 일환으로 겨우 허가를 얻어낸 서평 계간지 <오늘의 책>을 한길사가 맡아서 간행하게 되는데, 박현채 선생은 이 잡지에도 늘 주목할 만한 논의를 발표한다. 1985년 겨울호의 '공동체운동과 공동체실현의 가능성'과 1986년 겨울호의 '한반도에 있어서 국가권력의 제양상: 역사에 있어서 자본주의의 발전과 국가권력의 전개' 등이 그것이다. 때로는 이들 무크지와 잡지에 토론자로 참여하여 당대의 현실문제를 분석한다.
한길사는 1979년 10월 <해방전후사의 인식> 제1권을 출간한 이후 1989년까지 10년에 걸쳐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전6권으로 기획한다. 제2권은 80년대 초반부터 기획되었지만, 문공부 당국이 우리의 기획을 어떻게 알고 계속 '보류'를 요구하는 바람에 1985년 10월에야 출간되었다.
제2권부터는 제1권의 독자들이 성장하여 대거 필자로 참여하게 되는데, 박 선생은 제2권에서 '남북분단의 민족경제사적 위치'를 발표하고 제3권(87년 12월)에 '해방후 정치사회 운동을 보는 시각'을 발표한다.
한길역사강좌에서 '민족경제론' 특강을 하다
한길사는 8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강좌의 기획을 통해 저자와 독자를 한 마당에 모아 지적 연찬을 펼치는 또 하나의 열린학교를 시도한다. 1984년 여름에는 해인사 홍제암에서 2박3일로 저자·독자·출판인이 함께하는 '연찬회'를 가진 바 있고 85년 여름부터 한길역사강좌·한길역사기행·한길사회과학강좌를 시작했다.
마포경찰서 뒤쪽에 있는 한 인쇄소 건물을 빌려 쓰던 한길사는 1982년 고대 앞 안암동의 가정집으로 사무실을 옮기는데 나는 이 가정집의 부엌과 큰방을 터서 하나의 강의실을 만들었다.
출판사는 저자와 독자를 만나게 하고 대화하게 하는 일을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많은 학생들과 교수들이 퇴학당하고 해직되어 있는 상황에서 또 하나의 열린학교를 우리 출판사가 해볼 수 있지 않나 했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들이 우리가 펴내는 많은 책들의 저자·필자들이고 이들이 직접 강의를 한다면 그만큼 더 의미 있다고 보았다.
나는 아울러 교실과 책상에서만의 강의와 강좌란 일정한 한계를 갖고 있다고 보았다. 역사의 현장 삶의 현장에서 살아 있는 우리 민족사를 온몸으로 체험해보자는 '역사기행'을 '역사강좌'와 함께 진행하는 새로운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박태순의 <국토와 민중>을 펴낼 무렵이었고, 저자 박태순 선생과 나는 글로 국토기행을 할 것이 아니라 몸과 발로 국토운동을 해보자고 했다.
박현채 선생은 한길역사강좌·한길역사기행에 늘 동참하는 강사였다. 한길역사강좌는 한 주제에 2~3개월에 걸쳐 보통 10여 강의가 진행되었는데, 역사강좌는 쉼 없이 기획되어 1990년 우리 회사가 강남 신사동으로 이사 올 때까지 안암동 그곳의 작은 강의실에서 계속되었다.
물론 강남에 와서도 이런저런 강좌는 계속되었다. 이들 강의는 녹취되고 정리되어 책으로 계속 간행되었는데, 박 선생은 <한국민족운동의 이념과 역사> <한국의 사회경제사> <일제식민지의 민족운동> 등의 강좌에 참여했다.
박현채 선생 말고도 한길역사강좌와 한길역사기행에 참여한 연구자들은 송건호, 이우성, 리영희, 강만길, 이효재, 임헌영, 고은, 박태순, 박석무, 김용운, 김진균, 이이화, 차기벽, 송기숙, 김태영, 김남식, 이호철, 이영훈, 유인호, 이대근, 조동걸, 윤병석, 임종국, 이만열, 진덕규, 전철환, 신용하, 김윤식, 송기숙, 양호민, 김동욱, 신영훈, 윤서석, 채희완 등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지식인·학자들이었다.
새 강좌가 개설되고, 또 강사들과 역사기행을 떠나는 날은 시대의 우울도 청명해지는 것 같았다.
늘 청년 같던 '낭만주의자' 박현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