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을 굽어보고 있는 동강할미꽃. 인간들은 죽어가는 동강을 살려내라.강기희
지금 동강변엔 동강할미꽃을 대신해 바위나리가 한창 피어나고 있다. 좁쌀꽃 같은 바위나리는 몇 해 전 '돌단풍'이라는 이름을 새로이 얻었다. 피어나는 잎이 단풍나무 잎과 닮아 있어 사람들은 바위나리를 돌단풍이라 명했다.
바위나리는 이 지역 사람들의 입에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던 이름이었다. 바위에 피는 나리꽃이라는 뜻이었고, '바우나리" 또는 '방구나리'라고도 했다. 바위나리는 꽃 피는 기간이 제법 길어 여름의 문턱까지 간다.
어릴 적 먹을 것이 없던 시절 바위나리는 군것질감으로 손색이 없었다. 강변의 바위틈에 살고 있는 바위나리의 뿌리를 캐 껍질을 까면 훌륭한 먹을거리가 되었다. 씹으면 아삭아삭한 게 먹는 맛도 제법 있었다. 30년이 훨씬 넘었으니 오래 전의 일이다. 요즘 아이들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겠다.
귤암리에서 소로 밭갈이를 하는 농부를 만났다. 소는 암소였고 작년에 이어 올해 두번째 밭 가는 일을 하고 있단다. 하루 500여 평의 밭을 가는 소는 수태 중이었다. 다음 달엔 새끼를 낳을 거라고 주인이 말했다.
귤암리를 지나 동강 마을인 가수리 운치리 덕천리 제장마을과 연포마을까지의 암벽엔 바위나리꽃이 가득했다. 정선지역에선 '뼝때'라고 하는 암벽은 석회암층이라 다른 지역의 암벽과 달리 이 지역에서만 자생하는 식물들이 많다.
동강변에 낮게 깔린 버드나무에 핀 연초록 새순은 그 자체로 하나의 풍경이다. 봄기운 가득한 강변을 끼고 달린다. 속도는 최대한 줄인다. 물빛은 흐리다. 호사비오리나 원앙은 자취를 감추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물빛 좋은 시절엔 동강에서 물고기 노니는 모습을 심심찮게 관찰할 수 있었으나 이젠 먼 옛날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싯누런 물빛을 애써 모른척하며 동강을 따라간다. 운치리를 지나다 나리소에서 가던 길 잠시 멈춘다.
나리소는 동강이 굽이치면서 만들어낸 비경이다. 산을 넘지 못한 강은 산자락 끝에다 멋진 작품 하나를 만들어 놓았다. 사람의 접근을 거부하는 나리소는 여행자가 서 있는 언덕이나 백운산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물빛은 나리소라고 예외는 아니다.
동강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세상 시름 덧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