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준 촬영
연에 대한 이야기가 길어졌는데요. 자세히 설명하는 이유는 이러한 식물적인 특성이 다양한 상징을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연은 그 크기와 아름다운 색과 맛과 독특한 향기로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림의 소재로서 연꽃은 모란만큼이나 많이 등장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모란이 꽃 가운데 왕이라면, 연꽃은 화중군자라고 할 수 있어요.
박물관에 가보면 연과 관련된 유물이 대단히 많습니다. 미술사학자 강우방 선생님은 한 저서에서 고대미술뿐만 아니라 근대에 이르기까지 연꽃과 용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면 한국미술사의 줄거리를 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 미술 속에 등장하는 여러 소재 중 연과 관련된 문양이 가장 많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들 짐작하시겠지만 특히 불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요.
예를 들어 사찰에서는 부처나 보살을 안치하는 대좌(부처·보살 또는 천인·승려 등이 앉거나 서는 자리)를 연꽃으로 장식합니다. 그래서 연화대라고 부릅니다. 특히 불상의 대좌로 사용되는 것은 진흙 속에서도 깨끗한 꽃을 피우는 연꽃처럼 혼탁한 세상에서 오염되지 않고 세상을 구제해주기를 바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외에도 불전을 구성하는 불단과 천장, 문살, 탑, 부도, 외벽, 기와, 암·수막새에 이르기까지, 심지어는 담장까지도 연꽃이 장식되지 않은 곳이 거의 없습니다.
연꽃만큼 내밀한 불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도 드물지요. 연꽃은 불교의 정신세계와 신자들의 부처를 향한 신앙심을 짙게 투영하고 있는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모든 연은 '물'에서 싹트고 꽃핍니다. 엄마의 자궁이 그러하듯 모든 생물체는 물에서 시작되고 물과 관련되지요. 물이 가진 우주창조와 빛과 생명의 상징성이 곧 연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불교와 관련해서 폭넓은 상징체계를 이룹니다.
극락정토를 향해 피는 꿈
부처의 지혜를 믿는 사람들은 죽으면 극락세계로 가서 연꽃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고 해요. 그래서 만개한 연꽃 위에 보살과 동자가 앉아 있는 그림을 많이 볼 수 있어요. 이것이 모두 연화화생의 상징 때문이에요.
이승에서의 번뇌와 집착을 벗고 극락정토(불교에서 이르는 아미타불이 살고 있다는 정토. 더없이 안락하여 즐거움만 있다고 함)에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불자들의 공통된 소망입니다. 그런데 죽어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모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창조와 생성의 의미를 지닌 연꽃이 그 모태의 상징이 된 것입니다.
더러운 진흙탕 속에서 청정한 꽃을 피워 맑은 향기를 내는 연꽃은 또한 오랜 수행 끝에 깨달음에 이른 수행자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손에 활짝 핀 연꽃이나 연꽃봉오리를 들고 있는 관음보살의 모습은 보살의 청정과 무염 또는 높은 깨달음의 경지를 드러내는 것이지요.
그리고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대좌를 연꽃으로 장식하는데요. 보통 여덟 장의 꽃잎을 가진 연꽃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팔엽 연꽃문양은 불교의 신앙체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불법의 진리는 팔엽을 가진 연화의 중심으로 모이게 된다고 해요. 그래서 불상이나 탑등이 팔엽연화 가운데에 앉게 됩니다.
이제부터 불상이나 석탑을 보게 되면 진짜로 연꽃이 있는지, 과연 여덟 장의 꽃잎인지 확인해 보세요.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사리기에 나타나는 연꽃은 불법을 상징합니다. 범종과 풍탁, 금고 등을 연화문으로 장식하는 것은 연꽃의 중심부분을 쳐서 불법의 소리를 전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또한 그 은은한 소리가 퍼져나가 불법이 전파되어 그 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비유이기도 해요.
불교경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경전 가운데 하나인 <묘법연화경>에서는 불법의 근원적인 가르침을 연꽃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맑고 향기로운 정신세계를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불교와 도교, 유교까지 모두 끌어안은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