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보 박물관의 2층 사진 전시실.김성호
차트 시장을 지나 좁은 골목길로 빠져드니 리처드 버튼이 말한 대로 길바닥이 삐죽삐죽 튀어나온 바위 돌로 깔려 있었다. 옛날 도시의 뒷골목 그대로였다. 골목길을 조금 지나자 나무로 깔끔하게 지은 2층짜리 가옥이 나타났다. 프랑스 시인 아르튀르 랭보 박물관이자 자료실.
랭보는 하라르에 머무는 동안 하라르 호텔 등 몇 군데서 머물렀는데, 이 박물관은 바로 랭보가 머물던 곳 근처에 랭보가 죽은 뒤 인도 상인이 지은 건물이다. 하라르에는 지난 1887년 이후 많은 인도상인들이 들어와 인도풍의 집들을 짓기 시작했다.
박물관 1층은 하라르 역사에 대한 책들이 보존되어 있는 도서관으로 사용되고 있었고, 2층에는 랭보의 삶을 보여주는 사진과 프랑스어로 된 작품과 편지, 하라르의 전통 예술품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2층에서 내부를 통해 한층 더 올라가니 넓은 실내 옥상 베란다가 나오는데, 마치 전망대처럼 지어놓았다. 베란다 창문을 통해 하라르 시내를 거의 다 볼 수 있고, 멀리 체르체르 산맥도 구경할 수 있었다. 옥상의 베란다를 환상적인 전망대 역할을 하도록 지은 인도인들의 건축술이 놀라웠다.
프랑스의 천재시인인 랭보가 지난 1880년 26살의 젊은 나이에 시를 버리고 세상을 등지며 멀리 이곳 하라르까지 온 이유는 무엇일까.
"속박되어 꼼짝 못하는 한가로운 청춘, 자질구레한 걱정 탓으로 내 인생을 망쳐 버렸네. 아아, 내 마음이 열중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오게 해다오"(<가장 높은 탑의 노래>라며 10대 중반에 천재시인으로 혜성처럼 등단했으나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한 랭보.
그는 "나는 가리라, 멀리, 저 멀리, 보헤미안처럼, 여인을 데려가듯 행복하게, 자연속으로…"(<감각>)라고 외치며 아프리카 대륙 하라르로 찾아왔다. 그가 찾고자 했던 것은 바로 인간 본연의 자유와 자신을 억누르던 익숙한 것들로부터의 이탈이었을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커피와 동물가죽 무역상으로 왔던 랭보는 무기거래상으로 변모하며 11년 동안 이곳에 머물렀다. 당시 메넬리크 2세 황제와 그의 사촌이자 하라르의 총독이며,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의 아버지인 라스 마콘넨과 두터운 친분을 가졌던 그는 유럽제 소총과 무기 등을 그들에게 팔기 시작했다. 랭보가 판 무기는 1896년 에티오피아가 아드와 전투에서 이탈리아 침략군을 물리치는 데 기여하게 된다.
랭보가 다리를 절단하고 프랑스 마르세이유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요양하고 있을 때인 1891년 7월 12일 라스 마콘넨은 랭보에게 편지를 보내 "건강을 되찾아 다시 하라르로 돌아와 사업을 재개하기를 바란다"고 각별한 우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랭보의 처절한 외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