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시간 교실 풍경안준철
그 후 며칠이 지나 평소 친하게 지내는 한 여선생님이 저를 부르더니 어떻게 알았는지 느닷없이 그 휘파람 사건을 들먹이는 것이었습니다.
"수업시간에 휘파람을 분 아이가 있었다면서요. 학력 평가 주관식 국어시험에 6하 원칙에 의거해서 최근에 일어난 일을 써보라는 문제가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쓴 아이들이 많았어요.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었던가 봐요. 이제야 선생님 수준에 맞는 아이들을 만났구나 싶었어요!"
그 여선생님 말로는 여섯 명 아니면 일곱 명이 그 이야기를 소재로 글을 썼다고 했습니다. 누구일까? 어떤 내용일까? 저는 그것이 궁금하기만 했습니다. 아이들이 써낸 시험지를 확인하고 싶은 충동조차 일었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다행히도 그날 7교시 마지막 수업이 경영정보과 수업이었습니다. 수업 종료를 십 분쯤 남겨두고 그 이야기를 꺼내면서 기억에 남아 있는 대로 글을 다시 한 번 써보라고 했습니다.
학력평가에 휘파람 사건을 소재로 쓴 아이는 일곱 명이었습니다. 그들이 기억을 더듬어 글을 쓰는 동안 다른 아이들에게도 영어 시간에 있었던 일들을 소재로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영어 수업에 대한 인상이나 건의도 좋고, 개인적인 부탁이 있으면 그것을 써도 좋고, 딱히 쓸 말이 없으면 멋진 시를 한 편 써도 좋다고 했습니다. 시가 어려우면 낙서라도.
그 말을 잘 했다 싶게 한 녀석이 멋진 작품을 만들어냈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시보다도 더 멋진 낙서였습니다.
'안녕? 나야!! 오랜만이야!!
안녕 A4!!! 반성문 이후 간만인 걸~!!
중학교 땐 하루에 한 번씩 만났는데...
자주 찾아오렴. 네가 없으니 외롭다.'
또 다른 작품(?) 중에는 저를 은근히 약 올리는 글도 있었고, 괜스레 코끝을 찡하게 만든 녀석도 있었습니다. 휘파람 사건을 쓴 아이 중에도 6하 원칙에 의거해서 단 두 줄의 글을 써낸 아이가 있는가 하면, 짧은 시간에 어떻게 그렇게 긴 글을 쓸 수 있었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진지하게 글을 쓴 아이도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다음 날 저에게 영어 문장으로 된 글을 가져온 아이도 있었습니다. 자화자찬이 될 소지가 없지 않지만 자랑스러운 경영정보과 1학년 1반 학생들의 글을 소개할까 합니다.
'선생님! 친절한 교사가 되겠다고 했지만 바로 어제부터 무서운 얼굴을 보여주시네요. 후후 만원이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첫 만남을 가진 날, 영어 선생님이 우리에게 친절한 교사가 되겠다고 약속을 하셨다. 그 후 영어 선생님은 영어를 쉽게 잘 가르쳐 주셨고, 정말 화를 한 번도 내신 적이 없다. 나는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영어시간이 너무 재미있다. 더욱더 열심히 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