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병원 의·과학연구소(기사 내용과 특정관련이 없습니다).연합뉴스 전수영
둘째, 우리 국가 역량으로는 기초과학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생각도 팽배하다.
만약 한 나라 기초과학의 성공을 아인슈타인급 과학자를 몇 명 배출했는가, 노벨상 수상자를 몇 명 확보하고 있는가로만 판단한다면, 당분간 한국이 '성공'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일차적인 성공을 자생력의 확보라고 생각한다. 기초학문은 말 그대로 '지식의 생산'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우리 땅, 우리 바다, 우리의 대기, 우리의 역사에 대한 지식을 스스로 캐낼 수 있다면 적어도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불행히도 아직 많은 분야에서 우리는 이 자생력이 없다.
어떤 이는 우리나라 처지에 그렇게 많은 국가역량을 기초학문에 투여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물은 정확히 100℃가 되어야 끓는다. 80℃나 99℃는 수증기를 만드는 데 아무런 의미가 없다.
타 국가와 비교해서 인구비례가 어떠니 GDP 대비가 어떠니 하는 말들은 기초학문의 자생력에 대한 이 임계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그것이 중요한데도 아직 수준 이하라면, 오히려 훨씬 더 비대칭적이고 공격적인 투자를 해야 남들을 따라갈 수 있다.
예를 들면, 삼성의 수원연구소는 단일 연구소로는 동양 최대이며 박사급 인력만 2000여명 확보하고 있다. 이것이 삼성 경쟁력의 원천임은 자명하다.
또한, 한국 경제의 큰 버팀목인 조선산업도 중복투자가 우려될만큼 압도적인 물량으로 세계 1~7위 업체를 독식하고 있다. 그 경쟁력의 핵심은 막대한 설계인력이다. 일본은 전체를 통틀어 2000여 명의 설계인력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의 조선업체들은 회사마다 1300여명의 전문설계인력을 확보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이들 핵심연구 인력을 국가역량에 맞게, 혹은 일본과 인구나 국력을 비교해서 적정한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기초학문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국력에 비례하는 숫자대로 대책없이 인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해당분야에 대한 전략적인 가치판단을 먼저 하는 것이다. 그에 따른 비대칭적 집중이 우리의 생존전략이어야 한다.
한류가 중요하고 고구려가 중요하고 독도가 중요하고 인공위성과 우주개발과 자원 확보가 중요하다면, 그 중요하다고 여기는 무게감만큼이나 전문인력을 어떻게 양성할 것인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만주를 되찾고 싶은가? 그렇다면 동북공정을 주도하는 중국의 사회과학원을 '압도적으로' 능가하는 연구소부터 지어라.
[편견③] 비용? 국방개혁의 40조원과 BK21의 3000억원
셋째, 문제는 돈이 아니라 마인드이다.
이쯤해서 경제도 어렵고 먹고살기 힘든데 무슨 돈으로 기초학문에 돈을 쏟아 붓느냐는 반론이 나올 법 하다. "경제도 어려운데…" 이 레토릭은 내가 고등학교 다닐 적부터 숱하게 들어왔다. 경제가 어려우면 어렵다는 이유로 민주화나 개혁적인 요구들을 외면해 왔고 경기가 좀 좋아지면 "이제 막 경제가 좋아지려는데…"라는 말로 입을 막아 온 것이 지난 30여 년 아니었던가.
아무리 돈이 없다고 해도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다. 한해 예산이 200조원이 넘고 국방비로만 약 20조원 쓰고 있다.
그런데 내가 아는 물리학 분야 최대 프로젝트는 겨우 100억 원 규모다. 2차 두뇌한국21사업(BK21)은 한해 3000억원씩 7년간 총 2조1000억원 밖에 안 된다. 정부가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국방개혁 2020에 의하면 2020년까지 무려 621조원이 투여된다. 연간 40조원이 넘는 돈이다.
만약 북미수교협상이 무사히 진행되고 한반도 평화협정이 체결되어 정전협정을 대체하게 되면, 말 그대로 '휴전선'은 없어진다. 즉, DMZ를 놓고 대치 중인 남북한 200만 병력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된다.
사실 대선후보님들이 이렇게 역사적으로 중차대한 문제를 심도있고 진지하게 성찰하여 가장 합리적이고 적극적인 방안들로 지금 국민들을 설득해야 할 터인데, 그렇지 않은 현실이 나는 무척 의아하다. 이런 통합된 관점을 견지하고 있으면 앞으로 국방비를 대폭 줄일 수 있고 그 돈으로 엄청나게 많은 일들을 기획할 수 있다.
연간 40조원(국방개혁)과 3000억원(BK21)의 이 천양지차를 줄이는 것은 그래서 돈의 문제가 아니라 지도자의 '마인드'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