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호분 묘실 정면에는 유교의 윤리적 가르침을 풀이한 6첩 병풍이 그려져 있다. 지금 사진에서 보니 촬영이 금지된 곳이었다.조수영
두 번째 묘는 상인의 묘다. 고향을 떠나 멀리 이곳 아스타나에 묻히면서 고향의 그리운 풍경을 벽에 그렸다.
또 하나의 묘는 부부 합장묘인데, 미라가 유리관 속에 전시되고 있다. 남자는 베개를 베고 있고, 여자는 베개가 없다. 부부합장이 당시의 풍습인지 알 길은 없으나 부부의 인연이 사후까지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아스타나 고분군에는 고창국과 당나라의 역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인 대량의 유물, 벽화, 미라가 출토되었다. 특히 216호에서 나온 풍만하고 화려한 당대 미인의 모습을 조각하여 채색한 여인의 목상, 종이로 만든 관, 관을 덮을 때 쓰던 수십 점의 복희여와도가 대량 출토되었다.
이밖에도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알려주는 통행증이나 관용문서, 고소장 등도 출토되었다. 사불나의 아들 금아와 조설창의 딸 강실분이 우차에 치여 배상해달라는 내용의 고소장이다.
관용문서가 아닌 사문서도 있다. 적강녀라는 여인이 명주 20필을 주고 목관을 산다는 매매계약서다. 그런가 하면 탄원서도 있다. 장식현이라는 병사가 징집되어 간 뒤 오랫동안 소식이 없자 그의 누이동생인 아모가 관청에 올린 탄원서이다. 오빠가 군역에 들어가 교하거방에 배속되었으나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아 집안 일이 곤란하니 대신 자신을 데려가 대신 일하게 해달라는 내용이다.
지금은 거의 모든 유물이 투루판시 박물관이나 우루무치 박물관으로 이전되고 무덤과 3개의 미라만 공개하고 있을 뿐이다.
투루판에서 한낮에 어디를 다닌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늘만 벗어나면 마치 화재 현장 곁에 있는 것처럼 뜨거운 기운이 확확 끼친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식사 후 1시간 정도 낮잠을 잔다. 오후 일과는 3시부터 시작해 6시에 끝난다.
그러고 보면 8시간 근무라 하지만 낮잠시간을 빼고 나면 얼마 되지 않는다. 이곳에 왔으니 이곳의 법을 따라야 함은 물론이겠거니와 한낮의 더위는 더 이상 관광을 할 수 없게 했다. 숙소로 들어와 한숨 자고 오후 일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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