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를 잔인하게 뜯어간 흔적. 칼과 톱을 이용하여 독일, 일본 등으로 싹쓸이 해 갔다.조수영
서양의 탐험대가 싹쓸이 해 간 벽화들
그러나 위구르인들이 이슬람교를 받아들인 후 이슬람 세력들이 들어와 벽화를 칼로 긁고 또 파괴했으며, 심지어는 눈알을 파내어 버렸다. 이들은 종교상 모든 형태를 부정했기 때문에 이란과 파키스탄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불상과 많은 유적들을 파괴했다.
게다가 1898년 러시아학자 클레멘츠가 석굴을 발견한 이래, 20세기에 이르러 독일 고고학자 르콕과 그륀베델의 탐험대가 1902년부터 네 차례 조사하며 위구르인 공양도, 사천왕도 같은 수백 상자 분량의 벽화조각들을 칼과 톱으로 무자비하게 떼어갔다.
이런 식으로 가져간 벽화들은 동굴 하나를 거의 완벽하게 옮겨 놓은 듯했다. 그러나 이 벽화들은 베를린 박물관에 있다가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폭격으로 파괴되었다.
뒤이어 일본 승려 오타니 탐험대와 아스타나 고분을 발굴한 영국의 스타인도 들러 남아있는 유물들을 하이에나처럼 쓸어갔다. 도둑들은 벽화의 외곽 둘레에 깊은 칼자국을 낸 뒤 뒤로 톱을 집어넣어서 벽에서 떼어냈다. 석굴들은 껍데기만 남은 것이다. 벽에는 아직도 약탈의 잔인한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있었다.
석굴의 수도 원래 82개였다고 하나 지금은 42개만 남아있고 그나마 6개만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뜯겨진 부분을 제외하면 남아있는 부분의 색채는 세월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뚜렷했다.
제33굴의 뒷벽에는 석가의 열반을 애도하는 그림이 있는데 아랫부분은 없어지고 윗부분만 남았다. ‘각국사절도’라 불리며 그림의 왼쪽에는 보살과 호법신들이, 우측에는 각국에서 온 사절단이 있다. 동서 문화교류가 왕성했음을 알려준다. 또한 각 민족의 얼굴 생김새와 표정, 풍속 등이 잘 나타나 이곳의 상징적 벽화로 입장권에도 그려져 있었다.
천불도를 베제크릭에 돌려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