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미국 히스패닉 상공회의소 초청으로 연설을 한 부시 미 대통령.백악관 홈페이지
아베의 이중적 태도가 불만인 미국
이런 흐름 속에서 일본군 성 노예 동원의 '강제성'을 부정하는 아베 총리의 발언이 지난 1일 돌출되어 나왔다. 이번 사태는 미국 의회의 관련 결의안 추진이 논쟁의 중심에 있다는 점에서 한일 양국 사이에서만 전개됐던 과거의 이 문제를 둘러싼 갈등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문제가 불거지자 미국 측이 즉각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의 '역사인식 부재'를 질타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마침 일본을 방문 중이던 존 네그로폰테 미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 2일 "이 문제는 전쟁 중에 일어난 일 가운데 가장 개탄스러운 사건이라는 게 우리의 입장"이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어난 사건을 축소하기 위한 어떠한 시도에도 미국은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국장을 지낸 마이클 그린도 <요미우리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강제성 유무에 관계없이, 피해자의 경험은 비극이고, 일본의 국제적인 평판이 좋아지지 않는다"고 일침을 놓았다. AP통신, 파이낸셜타임스 등 구미 언론들도 일본 정부에 비판적인 입장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미국 측의 '메시지'는 분명해 보인다. 일본에게 과거사 문제로 이 지역 국가들과 또 다시 갈등을 일으키지 말라는 것이다. 갈등의 원인 제공을 일본 측이 하고 있다는 '질타'의 의미도 비교적 분명히 담겨있다.
결국 일본군 성 노예 동원의 '강제성'을 둘러싼 논란은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벌어진 미국과 일본의 틈을 더욱 확대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아베 총리가 '강성' 이미지 회복을 위해 일부러 택한 길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으나, 만약 그렇다면 너무 무모한 시도로 보인다.
아베 총리를 포함, 일본군 성 노예 동원의 '강제성'을 부인해온 세력들은 '협의'와 '광의'를 구분, "광의의 강제성은 인정되지만, 협의의 강제성은 증거가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본인의 의사에 반해 간 것 자체는 '광의의 강제성'이고, 일본 관헌들이 직접 끌고 간 것은 '협의의 강제성'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바깥세계에서 보면 아무 의미 없는 이런 논리를 전개하면서 틈만 나면 '강제성'에 대한 부정을 시도해왔다. 아베는 총리 취임 이후 역사인식와 관련 1993년 당시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이 일본정부의 입장을 정리해 발표한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고 밝혔다.
'고노 담화'는 일본군 성 노예 동원에 있어서 일본 정부와 군의 관여,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강압적으로 이뤄진 점 등을 인정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런 역사인식을 계승한다고 하면서 '강제성'은 부인하는 이율배반적인 언행을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
미일관계의 급속한 변화는 대북정책의 차이에서 비롯됐지만 여러 가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겹치면서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역사상 가장 양호한 상태를 보이고 있는 미중관계의 발전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은 최근 중국과의 관계에서 고질적 갈등 요소였던 대만문제 등에서 가급적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상호 협조체제를 구축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내 보이고 있다.
중국도 후진타오 주석 체제가 공고화되면서 과거 정권들보다 훨씬 대미관계를 우호적으로 풀어가려는 노력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 같은 미중관계는 6자회담에서의 협력 등으로 그 빛을 발하고 있다.
힐 차관보 등 미 정부당국자들은 중국이 6자회담에서 의장국으로서 보여주고 있는 역할을 거듭 높이 평가하고 있다. 중국으로서도 한반도 문제에 지금처럼 정력을 쏟은 시기는 드물었다.
미국은 이라크 전황의 악화 등으로 아시아 쪽에 많은 신경을 쏟을 수 없게 되면서 이 지역 국가들간 협조적 질서 구축을 통해 힘의 균형을 꾀하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지금 아베 정권이 보이고 있는 자세는 미국의 의도에 명백히 반하는 것이다.
일본은 계속해서 미국의 의도를 거스르는 방향으로 갈 것인가? 당분간은 그럴 가능성이 높다. 취임 이후 계속된 지지율 하락에 고심하고 있는 아베 총리는 대외관계에서의 타협 노선을 접고, 확실한 ‘강경 이미지’ 회복에 나섰다는 일본 언론의 분석도 나오고 있다.
아베 총리는 미국과의 갈등을 감수하더라도 이렇게 나가는 것이 오는 7월 참의원 선거에서의 득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에 예정돼 있는 중국과의 정상외교 일정과 미국의 이해 등을 감안할 때 아베 총리가 계속 이 같은 노선을 밀고 나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국제관계에서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말이 요즘처럼 실감나는 때가 없다. 모든 국가간 관계는 변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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