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할아버지에게 정성을 드리고 나면, 마을 가운데 당할머니에게 제사를 지낸다.김준
이번 당산제의 제주는 마을이장 부부(조성실, 이순화)다. 옛날과 달리 선뜻 제주를 맡으려 하는 사람이 없다. 마을회의를 해서 깨끗하고 생기 복덕이 있는 사람을 찾아 부탁하기도 어렵다. 그래서인지 대부분 당산제는 이장이 준비하고 이장에 제사를 지낸다. 이장 집에 금줄이 쳐졌다. 며칠 전 고창읍장에서 시장을 봐 음식을 준비해 두었다.
마을주민들의 정성을 모아야 하기 때문에 주민들이 모은 돈으로 제물을 구입한다. 옛날 같으면 제물을 살 때는 말을 해서도 안 되고, 값을 흥정해서도 안 된다는 금기사항들이 엄격했다. 그렇지만 제의를 모시고 나면 주민들이 모여 한바탕 놀이를 벌이는 '난장'으로 변한다. 그래서 마을굿은 '의례'와 '놀이'를 겸한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영기를 앞세워 음식을 나르고, 제주 풍물패 주민들이 뒤를 따른다. 가끔씩 빗방울이 떨어지며 거센 바람이 제장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을 밀어낸다. 며칠 전부터 당산나무에 금줄을 쳐 신성한 공간임을 표시해 두었다. 지역에 따라 황토를 뿌리기도 한다. 제물로는 삼실과, 나물, 메, 떡, 돼지머리, 생선(조기, 병치, 준치, 민어, 상어)을 준비했다.
이장부부가 제를 올리는 동안에 주민들은 할아버지 당산 주위에 모여 구경을 하고, 풍물패는 소리를 멈추고 기다린다. 심한 바람에 돼지머리에 꽂아 둔 만 원짜리가 날라 오른다. 서둘러 제의를 마치고 간단한 음복을 한 후 할머니 당산으로 이동한다.
멀리 변산반도가 희미하게 보이고 소금을 구웠던 염전터는 물이 빠져 갯벌이 드러났다. 거친 바람소리에 농악소리도 파열음을 낸다. 할머니 당산은 마을가운데 있는 탓에 바람이 잔다.
더구나 제장 뒤로 옛날 마을회관이 바람을 막고 있어 옴팡지다. 이장부부가 먼저 할머니 당산에 절을 하고, 이어 마을주민들이 나선다. 절을 하는 주민들은 약간의 돈을 제상에 올리고 술을 따른다. 나도 나섰다.
'금년에도 섬과 바다로 나서는 길, 사고 없이 좋은 분들 만나서 많이 보고 배우고 즐겁게 지내게 해주십시오.'
우리 마을 '염전터'로 잘살게 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