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불도 마을 앞 바다김준
바다의 어둠은 소리와 함께 걷힌다. 갈매기들이 먹이 찾아 울기 시작한다. 물김을 뜯는 채취선은 김발의 물을 털어내며 물김을 걷어낸다. 바다의 어둠은 소리와 함께 걷힌다.
미황사가 자리한 달마산 위로 붉은 기운이 돌기 시작한다. 검은 먹을 묻힌 붓을 그어 놓은 듯 바다와 하늘을 가르던 달마산이 땅 끝에 이르러 점점 멀어진다. 이내 바다와 하늘이 붉은 색을 찾는다.
채취선이 지나간 바다가 거칠게 몸을 일으키더니 이내 잠든다. 바람이 불지 않아 다행이다. 만호바다에 떠 있는 김발 부표들이 전쟁에서 죽은 조선과 일본군의 머리처럼 보인다. 진도와 해남을 연결하는 만호바다. 남쪽으로 거슬러 멀리 고금도 덕진과 해남의 어란진 그리고 진도의 벽파진으로 이어지는 이 바다는 조선의 운명을 결정하는 명량해전의 싸움터였다.
만호바다에서 어란진은 보이지 않는다. 어란진을 가로막은 작은 섬 어불도 때문이다. 이순신은 일찍이 이를 간파하고 이곳에서 조선의 운명을 건 싸움을 준비했던 것이다.
전쟁을 기억하는 섬과 바다
조선시대 일본과 전쟁으로 바다를 내줘야 했던 주민들은 일제강점기엔 태평양 전쟁을 준비하는 일본군에게 동원되어 섬의 능선에 호를 파고 바위굴을 뚫어야 했다. 이러 저래 섬과 바다는 주민들의 몫이 아니었다.
섬 자체가 구압산이라는 해발 30여 미터의 작은 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안도로가 만들어진 남쪽 사면의 바다와 접한 곳에 아홉 개의 길고 짧은 동굴이 있다. 지금은 김양식에 이용되는 각종 어구들이 보관되어 있지만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전쟁시설이다. 마을이장 김영수(70)씨의 기억에 의하면, 일본군이 군수품을 숨기기 위해서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을 동원해 만들었다고 한다.
동굴의 규모는 폭 2-3미터에 폭 3-4미터에 이르며, 길이는 짧은 것이 3미터에서 긴 것은 15미터에 이른다. 김씨는 동굴만이 아니라 능선에 호를 파 전쟁에 대비했다고 알려줬다. 단순히 군수품을 숨기는 차원을 넘어 일본군이 주둔하면서 전쟁을 준비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