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미읍성 진남문, 현실로 존재하는 문이 추상적 상징성을 띠어 영역을 구분하는 경우가 있다김정봉
한국 건축에 있어 문은 단순히 독립적인 건축물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장소를 가리키는 문간(門間)의 성격을 가진다. 간혹 기념물로 지어지긴 하나 대개 문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담 혹은 다른 건축물과 어울려 제 기능을 다한다.
궁궐은 궁궐대로 성곽, 서원, 향교는 그들 나름대로 어울리는 문이 있다. 집의 규모에 맞지 않게 지나치게 크면 허세를 부린다고 욕을 먹게 되고, 유교적 건축물에 다른 문을 짓는다면 질서가 흐트러진다 하여 저항을 받게 된다.
문(門)은 동문(同門) 혹은 문벌(門閥)·가문(家門)과 같이 '같은 부류의 사람들', 한 집단의 지체 등을 나타내는 추상적 상징성을 갖기도 한다. 물질적인 문이 추상적 상징성을 띠는 의미로 굳어져 버린 예도 있다. '성문 바깥사람'과 '성문 안사람'이 그 예다.
성문 안사람과 바깥사람
"노비·승려·백정·무당·광대·상여꾼·기생·공장(工匠) 등 여덟 가지 종류의 팔천(八賤) 천민을 나라에서 정하여 구분한 세월이 얼마나 되었는가. 그 중에서도 가장 천한 것이 백정과 무당이다. 이 세상에서 짐승 말고는 노비보다 더 심한 차별 대우를 받는 것이 백정인지라 일반 양인들과는 같이 섞여 살지도 못하고 성문(城門) 바깥 멀찌감치 물러나 저희들끼리 모여 사니 다른 사람들한테는 '성 아랫것'이라는 비칭 낮춤말을 들었다.
그것은 부성(府城)고을이 아니어도 마찬가지였다. 사부(士夫)·반촌(班村)의 마을에는 말을 꺼낼 것도 없고, 민촌(民村)이라 할지라도 그 마을 안에 버젓이 섞여 살 수 없었다. 안에는 그만두고 언저리도 안되었다."
최명희의 <혼불>에 나오는 대목이다. 성문 안사람이냐, 바깥사람이냐에 따라 신분이 갈린다. 성문은 통로라기보다는 하나의 영역과 또 다른 영역을 구분하는 것으로 성문 안은 성문바깥사람들에겐 신성불가침(神聖不可侵)의 성문(聖門)이다.
담과 문이 실재(實在)하지 않아도 눈에 보이지 않는 담과 문이 버젓이 존재하여 반촌이나 민촌마을 사람들은 '천한 것들'에 대해 문을 닫고 있고, '천한 것들'도 그들 나름대로 '가진 것들'에 대해 문을 닫고 있다. 이때의 문은 소통의 수단은 더더욱 아니어서 문이라기보다는 절대 허물어지지 않는 벽(壁)이다. 문이 닫혀 있으면 그대로 벽이 돼 버린다.
문의 종류도 가지가지여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문이 있고, 문을 드나드는 주체에 따라 남자들이 출입하는 문이 있는가 하면 여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문이 있다. 게다가 산자들은 다니지 못하고 오직 혼백(魂魄)만이 다니는 문도 있다.
계층과 주인의 품격, 남녀를 구별한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