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고굴은 그리 높지 않은 절벽에 남북으로 1.8km에 걸쳐 만들어진 석굴이다. 하나하나의 굴마다 석불과 벽화가 가득하다.돈황연구원
돈황석굴은 돈황 시내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그다지 높지 않은 절벽 벽면에 남북으로 1.8km에 걸쳐 만들어진 석굴사원이다. 여러 층으로 뚫린 석굴은 현재 확인된 것만도 492개에 이르고, 2천여 개의 불상과, 총 면적이 4500㎡에 이르는 벽화가 있다. 사막(莫)의 높은 곳(高)에 있는 석굴(窟)이라 하여 막고굴(莫高窟)이라 부른다. 또한 최고 전성기에는 석굴수가 천 개가 넘어서 천불동(千佛洞)이라는 별명도 있다.
천년을 이어진 상인과 순례자의 불심
@BRI@전진시대 낙준스님은 수행 장소를 구하기 위해 돈황에 들렀다가 절벽 앞의 장엄한 일출 장면이 마치 천불을 보는 것 같아 굴을 뚫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13세기 원대에 이르기까지 천 년에 걸쳐 하나 둘씩 굴이 더 만들어져 동굴 사원이 되고, 벽화가 그려지고, 승려들이 승방으로 사용하면서 막고굴은 돈황주민과 대상들의 신앙의 성지로 변모하였다.
막고굴이 신앙의 성지로 빠르게 유명해진 것은 당시의 불안정한 시대상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굴들이 한창 조성되었을 당시는 5호16국 중 하나인 전량(前凉)이 돈황을 지배하고 있던 시기였다. 소국들이 각축하는 동안 세상이 흉흉했으므로 내세를 제시하는 불교가 더욱 빨리 사람들 마음 속에 뿌리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상인들과 순례자들은 이곳에서 힘든 여행길을 앞두고 부처님께 안전한 귀향을 빌었다. 이들은 돈과 불상을 시주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벽화가 그려진 새로운 석굴이 속속 생겨났다.
석굴군은 남쪽지구의 남굴과 북쪽지구의 북굴로 나눠진다. 남굴은 벽화와 불상들로 내부 장식이 되어 있는 반면, 북굴군의 석굴들은 벽화가 내부에 장식되어 있지 않고 석굴 안에서 바깥으로 이어지는 굴뚝이 만들어져 있다. 이것으로 보아 스님들이 기거한 승방과 수행도량의 선원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건조한 기후 덕분에 유지될 수 있었던 동굴
석굴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석굴암처럼 화강암을 새긴 바위석굴이 아닌 사암층 동굴이다. 벽면에 바로 새기는 것이 아니라 목재로 뼈대를 만든 다음, 진흙과 갈대 잎을 섞은 흙으로 형체를 만들고, 그 위에 벽토와 석회 같은 것으로 곱게 바른 다음, 수채화로 단청을 입혀 놓은 것들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의 것과 달리 섬세한 곡선과 화려한 채색이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제작되었지만 그 모양과 색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곳의 메마른 날씨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