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전인가, 진지전인가

[논쟁] 발기인대회 마친 '미래구상'은 어디로 갈까

등록 2007.01.31 12:42수정 2007.08.31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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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한국 미래구상 발족식'이 30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창조한국 미래구상 발족식'이 30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오마이뉴스 권우성
'진지전이냐, 기동전이냐.'
'비판적 지지·수혈론의 변종이냐, 새로운 정치운동을 위한 결사체냐.'


30일 발기인대회를 마친 '창조한국 미래구상'(가칭·아래 미래구상)의 대선 대응 전략과 성격을 둘러싸고 고개를 들고 있는 논쟁이다. 87년 6월항쟁의 성과로 대통령직선제가 재도입된 상황에서 '비판적 지지론', '후보단일화론', '민중후보 독자추대론' 등 재야운동진영에서 첨예했던 논쟁이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하지만 당시 논쟁의 재판이 아니라 정치지형 다변화에 따른 사회운동의 자연스런 분화 과정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여권의 탈당 정국에서 '제3세력'으로 주목받는 미래구상은 이날 오후 2시 서울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발기인대회를 열었다. 오는 대선에서 수구보수세력의 집권을 저지하고 진보개혁세력의 단일후보를 추진하기 위한 장정에 오른 것이다.

이들은 오는 3월 중순께 창립대회를 마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때까지 10만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전국 각 지역·분야의 사회운동 단체, 정책집단, 연구소 등과 대안정책을 공동 생산하기 위해 '행복한 나라 만들기 정책네트워크'를 구축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창립대회를 마친 후에는 국민후보 선출 과정을 담당할 후보추천위원회를 발족하고, '국민행동 네트워크'를 조직해 국민 참여를 이끌겠다는 구상이다.

이같은 움직임은 여권의 대선 대표주자가 부재하고, 의원들의 잇단 탈당 등 분당사태가 가시화하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대선에서 연대할 그룹으로 거론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시민운동을 비롯한 진보개혁진영 내부에서는 이들의 행보를 둘러싼 또 다른 차원의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진지전이냐, 기동전이냐

한 시민단체는 최근 내부토론회를 열고 일부 시민운동가들의 미래구상 참여 문제를 둘러싼 토론을 진행했다.


한 관계자는 "지금은 시민사회의 모든 전력을 대선에 집중해 기동전을 펼 시기가 아니라 시민운동에 남아 진지전을 준비해야 한다"며 "대선에서 실패한다면 그나마 힘든 사회운동도 생존하기 어려운 조건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됐다"고 전했다. 미래구상에 참여하는 것보다 시민운동에서 더 깊이 뿌리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단체는 소속 활동가들이 개별적으로 미래구상에 가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막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민영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분담론'을 주장했다. 김 처장은 지난 9일 민주사회정책연구원에서 주최한 '대선의 성격과 전망, 대응방향'이란 토론회에 참석해 "시민운동이 분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단일대오를 형성해 정치적 역할을 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현장 시민운동이 이번 대선에서 직접적인 정치개입 전략을 선택할 가능성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정당운동과 사회운동은 구별할 필요가 있다"며 "지금은 정당다운 정당을 제대로 건설하는 게 중요하고, 시민사회운동은 오히려 현장을 지키면서 대중과 만나고 낡은 운동방식을 진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역시 "미래구상은 대선에 직접 개입해 '협의의 정치'에 포함되고자 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이는) 기존 시민운동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협의의 운동'과 분리돼야 한다"고 말했다.

미래구상도 시민운동과 정치운동의 선긋기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지금종 전 문화연대 사무총장은 "새로운 정치운동은 정치와 어느 정도 간격을 유지해온 기존 시민운동과 다르다"면서 "시민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거나 개입해 수구보수세력의 집권을 막는 것이 우리 목표"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래구상으로서는 진보적인 시민운동을 해온 인사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절실한 실정이다. 미래구상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시민운동의 정치세력화' 등에 대한 우려 때문에 직함을 걸고 참여하기를 꺼려하는 인사들의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미래구상이 2~3월 중으로 각 지역과 분야를 망라한 사회운동단체 등과 함께 별도 조직인 '행복한 나라 만들기 정책네트워크'를 구축하려는 것도 이 같은 고민의 산물이다.

이날 대회에는 오충일 6월 사랑방 대표, 최열 환경재단 대표,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 등 200여명의 인사가 참석했다.
이날 대회에는 오충일 6월 사랑방 대표, 최열 환경재단 대표,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 등 200여명의 인사가 참석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비판적 지지·수혈이냐, 새로운 정치 결사체냐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미래구상에 대한 평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결국 87년 이후 논쟁으로 되돌아갔다"고 말문을 열었다. 손 교수는 특히 "작년 지방선거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한 것은 80년대식 민주·반민주 구도가 깨졌다는 것이고 반한나라당 연합, 민주대연합론, 비판적 지지론 등의 시대는 지나갔다는 얘기"라며 "그런데 미래구상이 주장하는 '반수구 국민후보' 전략은 내용적으로는 약간 다를지 몰라도 기본적으로 지나간 시대의 흐름에 위치해 있다"고 지적했다.

또 "(미래구상은) 수구 대 개혁을 주요 전선으로 하자는 것인데 지금은 오히려 신자유주의와 반신자유주의, 사회양극화, 부동산 문제 등이 국민들의 주 관심사"라며 "어느 후보가 바람직한지의 문제로 바라보지 말고 무엇으로 국민을 설득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미래구상의 중심인물들을 보면 시민사회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모색하는 게 아닌가 한다"면서 "하지만 독자적으로 일어설 힘이 없기 때문에 그런 지분을 갖고 이른바 자유주의적 개혁세력에 수혈되거나, 한 분파가 돼서 들어가는 형국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래구상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정대화 상지대 교수는 "우리의 문제의식은 누가 후보가 되는가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라며 "비정규직 문제, 무모한 한미FTA 추진, 수구보수세력에게 위협받는 한반도 평화 등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 정책을 만들고 우리 사회의 바람직한 지향점에 맞는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87년 당시에는 김영삼, 김대중 후보가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있었지만 지금은 정반대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데 무슨 비판적 지지냐"면서 "우리의 향후 활동을 통해 (지향점이) 드러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존 정치권 불신촉발운동이 진보정치의 공간 제공"

조희연 교수는 "개인적으로 미래구상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전제한 뒤 "2000년 총선 때 민주노동당 일각에서는 '낙선운동'을 비판하기도 했는데 당시 난 양날개론, 즉 기존정치에 대한 불신운동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지금도 미래구상처럼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촉발운동이 있어야 진보정치의 공간이 있다"며 진보정치와 미래구상의 분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2002년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가 독립후보로 출마하면서 민주노동당을 포괄하는 '반수구 연합전선'을 펴는 단계는 지났다"면서도 "하지만 미래구상이 분당세력과 합치지 않을 경우 민주노동당 등과 함께 진보진영 단일후보를 낼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미래구상 발기인대회 행사장에서 만난 최규엽 민주노동당 집권전략위원장은 "이번 선거를 정책중심으로 치르고 역사가 후퇴하는 것을 막자는 미래구상의 취지와 입장에 적극 지지하고 찬성한다"면서 "미래구상의 참여자 면면을 놓고 볼 때 '비판적 지지론자'들은 기본적으로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많이 배우고 간다"면서 "미래구상과 대화하고 공통분모를 찾겠다"고 밝혔다.

한편 87년 항쟁 이후 재야운동과 사회운동의 정치세력화는 크게 '개혁적 보수정치'와 '진보정치'라는 두 흐름으로 진행됐다. 개혁적 보수정치는 김대중 당시 대통령후보가 만든 평화민주당에 일부 인사들이 편입되는 등 사실상 '수혈의 역사'로 이어졌다. 진보정치 흐름은 독자후보 추대론으로 시작해 백기완 후보 선거운동본부, 민중의 당, 민중당, 민주노동당 등으로 이어졌다.

또 '정치 중립'을 표방해온 시민운동도 90년대 초반 공명선거감시운동을 시작으로 국회감시운동, 낙선운동에 이르기까지 현실정치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해왔다.

미래구상이 오는 3월 창립대회 이후 어떤 행보를 보일지 주목된다. 과거 흐름을 답습할지, 아니면 진보개혁진영의 새로운 정치운동 결사체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UCC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기타리스트 임정현씨가 '창조한국 미래구상 발족식'에서 축하연주를 하고 있다.
UCC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기타리스트 임정현씨가 '창조한국 미래구상 발족식'에서 축하연주를 하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날 대회에는 오충일 6월 사랑방 대표, 최열 환경재단 대표,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 양길승 녹색병원 원장, 임진택 연출가, 정대화 교수, 김종현 전남연대회의 공동대표, 지금종 문화연대 전 사무총장, 김광식 희망제작소 부소장 등 200여명의 인사들이 참석했다.

또 이날 배포된 발기인 명단에는 전국 각지의 사회운동가를 비롯해 학계, 문화계, 종교계, 예술계 인사 330여명이 등재돼 있다.

오충일 6월사랑방 대표는 대회사에서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고 실업자가 수백만인 시대에서 창조한국 미래구상, 개혁이란 얘기가 통할 수 없고 밑바닥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듣기에도 귀찮은 말"이라면서 "수구보수세력도 민주, 평화, 개혁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는 상황인데도 한국 사회의 미래 지평을 열기 위해 여기 모였다"고 강조했다.

창립대회 때까지 미래구상의 실무를 총괄할 지금종 문화연대 전 사무총장은 '창조국가 미래전망'이란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시민중심 정치와 민주주의 확대 ▲고용 있는 성장을 위한 사람중심 경제발전 ▲공공성 실현을 통한 나눔과 연대의 사회 ▲역동적이고 자발적인 창조문화 ▲다중심적이고 개성 있는 지역발전 ▲인간과 자연이 조화로운 생태사회 ▲교류와 상생을 통한 한반도 평화정착 ▲인류 보편의 가치와 문화 다양성을 존중하는 열린 민족주의 등 구상을 밝혔다.

또 대안 정책을 우선 만들고 진보개혁진영의 국민후보를 선출하는 '선정책 후후보' 원칙을 설명한 뒤 "증오와 적대의 정치를 거부하고 이번 대선을 정책경쟁의 장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치운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UCC 스타인 기타리스트 임정현씨의 '캐논변주곡' 연주와 게릴라 래퍼 Chapter Two의 축하공연이 진행됐다. 손전등을 이용한 희망의 탑 점등식도 열렸다.
#미래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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