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조정래씨가 대하소설 <아리랑>의 100쇄 돌파를 기념해 29일 낮 서울 소공동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소감을 밝히고 있다.
오마이뉴스 남소연
"작가도 현실 발언해야 한다. 단, 자기 이익과 상관없이 정의로워야 한다."
대하소설 <아리랑> 100쇄를 맞은 소설가 조정래(64)씨가 따끔하게 꼬집었다. 현실 발언을 하되, 현실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것엔 철퇴를 가했다. 그는 "정치가는 강이 없는데도 다리를 놓겠다는 사람"으로 타고난 거짓말쟁이라며, 오류투성이인 "정치가와 함께 하는 건 문학에 대한 배반"이라고 일갈했다.
조씨는 또 '민족'이라는 단어를 빼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민족문학작가회의' 움직임과 관련해서도 '민족'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조씨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논리"라며 "민족이란 문제를 폐기처분하는 건 통일 이후 해도 된다. 폐기하지 맙시다. 폐기해야 한다는 건, 그건 신사대주의"라고 단언했다.
총 12권인 대하소설 <아리랑> 100쇄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가 29일(월)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렸다. 1994년 출간한 <아리랑>은 13년 만에 (1권 기준) 100쇄를 찍었다. '쇄'는 출판사가 책을 인쇄할 때마다 찍는 판 숫자. <아리랑>을 출간한 해냄 출판사는 <아리랑>이 총 330만부가 팔렸다고 밝혔다.
<아리랑> 100쇄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조정래씨는 자신이 "인간에 대한 애정과 존엄성을 지키려 했고, 나를 태어나게 한 모국에 대한 애정과 민족, 역사에 대해 천착하려 노력했다"며 세 가지를 지키려 애썼다고 토로했다.
조씨는 "<아리랑>을 쓰면서, 독자와 못 만날 거란 생각은 전혀 못 했다. 어찌 독자가 안 읽겠나 확신이 있었다"며 "작가들이 독자 찾아가려 몸부림치고 끌어당기려 애쓰면 그 열정이 독자한테 전달된다. 그게 문학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대하소설 쓰기는 지긋지긋하고 치 떨리게 힘들어
조정래씨는 또 대하소설을 쓰는 어려움도 털어놨다.
"1만5천매 대하소설 첫 장 쓰려면 20장 30장을 파지 내는데 이틀 걸려 첫 장 썼다. 그게 1만5천 분에 1이다. 내가 언제 이걸 다 쓸까 생각하면, 그 느낌이 터널 속에 들어가는 막막한 느낌이다."
<아리랑>을 쓰는데, 대하소설 쓰기가 지긋지긋하고 하도 치 떨리게 힘들어서 후배에게 넘기려고 한 일화도 털어놨다. 아끼는 후배에게 '한강시대'를 대하소설로 쓰라고 취재방법까지 가르쳐줬는데 안 써서 결국 자기가 썼다며, 그게 <한강>이라고 말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동안 가장 힘들었던 일로 조씨는 검찰에 고발당했던 일과 몸이 아팠던 일을 꼽았다. <아리랑>을 4분에 3가량 썼을 때인 1994년, 고발당하는 바람에 검찰에 소환 당해 조사 받고 그러느라 글 쓰는 걸 중단당해 정말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또 매일 35매에서 40매를 쓰다 보니, 오른쪽 관절이 아프고 손가락 끝까지 마비돼 고생한 일도 털어놨다.
작가 조정래씨는 또 '위기'라고까지 일컬어지는 우리 문학의 현실에 대해, "젊은 작가들 소설이 전부 주인공이 '나'이고 일인칭 소설인 건 문제"라고 꼬집었다. 주인공을 '나'라고 설정하면 전부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바람에 소설 속 인물이 능동적이 아니라 피동적인 인물이 돼버린다는 것이다.
그는 "후배들에게 3인칭 소설을 쓰라고 얘기했다"며 "인생을 다면적이고 총체적으로 받아들이고 독자가 감동 받게 하려면 인물이 다양해야 한다. 그런 소설이 어찌 영혼을 흔드는 소설이 되겠냐"고 따끔하게 지적했다.
또 "80년대 지났다고 역사시대마저 지나진 않았다. 일본 소설이 인기인 건 일본소설의 감각이 다른 데 대한 호기심으로 일시적 현상"이라며 "한국작가는 자기와 싸워야 하고 또 (핸드폰, 인터넷 같은) 문명의 이기와 싸워야 한다"고 준엄하게 꾸짖었다.
조씨는 결국엔 그 무엇도 문학을 어쩌지 못하고 "그동안 작가는 끊임없이 자기 세계를 탐구해야 한다"며 "문학은 인간이 언어를 쓰는 한 그 생명은 영원할 것"이라고 일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