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한산도와 거북선 담배의 모습입니다. 그 좋던 우리말 이름은 어디가고 디스, 레종, 에쎄 등 국적불명의 담배이름이 판치는 세상이 서운하기만 합니다.최형국
승리, 무궁화, 파랑새, 사슴, 나비, 해바라기, 한산도, 개나리, 단오, 태양, 샘….
지금 나열한 단어들이 과연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이해되시는 분 있나요? 그것은 다름 아닌 지금까지 나온 담배 이름 중 몇 가지를 적어본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Made in Korea'로 현재의 형태인 원통형 담배가 만들어진 것은 1945년 9월의 일입니다. 그 첫번째 담배 이름은 일제의 압제에 대한 광복의 기쁨을 표현한 '승리'였습니다.
그렇게 고운 우리말로 지어진 담배의 이름이 언제부터인가 디스, 에세, 레종 등등의 외국어로 도배된 지금. 담배마저도 세계화의 바람을 거스를 수 없나 보다 하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시려옵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 사람들은 언제부터 담배를 피웠을까요?
담배, 어떻게 우리나라에 전파되었을까
@BRI@에스파냐 이사벨리 여왕의 환송을 받으며 산타마리아호를 타고 떠난 콜럼버스는 1492년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포르투갈인 바스코 다 가마는 1498년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을 건너 인도의 캘리컷에 도착합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식민지 쟁탈전이 펼쳐지고 온 세계에 물건들이, 혈관을 따라 피가 움직이듯 동에서 서로 그리고 서에서 동으로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남아메리카 열대지대가 원산지인 담배는 그 과정에서 남만(현재의 베트남 지역)의 상선을 타고 16세기 후반 공납 방식으로 일본에 전파됩니다. 이후 담배는 일본 열도에 급속도로 번져 나갔고 현해탄을 건너 조선으로 전파되었는데, 그 정확한 시기를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담배는 일본에서 생산되는 풀인데 그 잎이 큰 것은 7~8촌쯤 된다. 가늘게 썰어 대나무 통에 담거나 혹은 은이나 주석으로 통을 만들어 담아서 불을 붙여 빨아들이는데, 맛은 쓰고 맵다.…
이 풀은 병진(1616)·정사(1617) 연간부터 바다를 건너 들어와 피우는 자가 있었으나 많지 않았는데, 신유(1621)·임술년(1622) 이래로는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어 손님을 대하면 번번이 차와 술을 담배로 대신하기 때문에 혹은 연다(煙茶)라고 하고 혹은 연주(煙酒)라고도 하였고, 심지어는 종자를 받아서 서로 교역까지 하였다." <인조실록37권, 인조 16년 8월 4일>
이처럼 담배가 조선에 전파된 지 십년도 안 돼서 온 국토가 자욱한 담배연기로 물들게 됩니다. 심지어 1622년과 그 다음해에는 담뱃불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서 동래 왜관의 80칸이나 되는 건물들이 전부 연기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몇 년의 시간이 흐른 후, 한 술 더 떠서 조선은 담배를 재배해서 청나라에 밀수출하기에 이르는데, 그 밀거래 수요가 엄청나서 조정에서는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게 됩니다. 그 대책은 강력한 법치국가의 틀을 확립하는 것으로써, 만약 담배 1근 이상을 밀수출하다가 걸리면 바로 목을 베는 참수형에 처하고 1근 미만은 의주의 감옥에 가두고 죄의 경중에 따라 벌을 주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담배 밀무역이 굉장한 재화를 벌어들이는 일로 각인되었기에 쉽게 그 고리는 끊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담배에 대한 수요가 날로 증가하게 되자 농부들이 벼를 비롯한 기본 먹을거리 작물들은 뒤로 하고 담배를 중심으로 농사를 지어서 국가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입기도 합니다. 정조의 문집인 <홍재전서>를 살펴보면 농사를 권유하는 부분에 다음과 같은 한탄섞인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벼는 지대가 높고 건조한 곳에서 가꾸고 기장은 비옥한 평지에 뿌리는가 하면 좋은 땅은 모두 담배와 차를 심어 농사가 위태롭게 되고 명산(名山)은 대부분 화전(火田)으로 들어가 곡식이 더 흔해지지 않고 있다." <홍재전서 제29권, 윤음 4>
이와 같이 담배의 생산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자 이에 따른 사회문제도 급격한 상승곡선을 그리게 됩니다. 심지어 어린아이들도 곰방대를 물고 담배를 피워 이에 대한 문제가 공식적으로 제기되기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