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폭탄 폭발 장면미국과학자협회
1949년 자정 3분전 소련이 핵실험에 성공하고, 이에 흥분한 해리 트루만 미국 대통령이 소련에 대한 핵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핵무기 증강에 나서겠다고 발표한 때이다.
1953년 자정 2분전 1952년 10월 미국이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수소폭탄을 실험하고, 9개월후 소련도 미국의 뒤를 따른 시점이다. 핵과학자협회는 시계의 분침을 1분 앞당기면서 이렇게 가다가는 인류의 종말이 멀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1960년 자정 7분전 미소간의 핵군비경쟁이 잠시 주춤하고 전세계적으로 반핵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시계의 분침이 5분 늦춰졌다.
1963년 자정 12분전 미국과 소련이 대기권 핵실험을 금지한 '부분 핵실험 금지 조약'에 서명한 직후이다.
1968년 자정 7분전 세계 곳곳에서 분쟁이 발생하고 중국과 프랑스가 핵실험에 성공하면서 분침은 또 다시 5분 당겨졌다.
1969년 자정 10분전 핵확산금지조약(NPT)이 탄생하면서 3분 늦춰졌다.
1972년 자정 12분전 미국과 소련이 전략무기제한협정(SALT)과 탄도미사일방어조약(ABM)에 서명하면서 2분 더 늦춰졌다.
1974년 자정 9분전 인도가 핵실험에 성공하고 미국과 소련이 다탄두 핵미사일의 개발·배치에 나서면서 자정에 3분 가까워졌다.
1980년 자정 7분전 미소간의 핵군축 협상이 중단되고 양국이 안보전략에서 핵무기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면서 2분 더 당겨졌다.
1981년 자정 4분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카터 행정부의 강력 반발, 레이건 행정부의 등장 등 신냉전이 조성되면서 최후의 심판 시계의 분침은 3분 더 당겨졌다. 특히 레이건은 소련과의 군축 협상을 중단하고 냉전을 종식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소련을 이기는 것이라고 천명했다.
1984년 자정 3분전 미소간의 신냉전이 정점에 달했던 시기로써, 레이건 행정부가 스타워즈, 즉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을 본격화하고 소련이 핵무기 성능 향상에 박차를 가했다.
1988년 자정 6분전 고르바초프의 등장,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반핵운동의 확산 등으로 미소간의 핵군축협상이 성과를 거둔 시기이다. 특히 두 나라는 중거리핵미사일폐기협정(INF)에 서명했는데, 이는 핵군축 역사의 이정표로 기록되었다. 이에 힘입어 분침이 3분 늦춰졌다.
1990년 자정 10분전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상징되는 동유럽의 붕괴와 소련의 불간섭 선언으로 냉전이 해체된 시기이다.
1991년 자정 17분전 냉전 해체 이후 미국과 소련이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에 나선 시점이다. 핵과학자협회는 "수만개의 핵무기가 국가안보를 보장한다는 환상이 결국 사라지게 되었다"며, 시계의 분침을 자정에서 가장 먼 17분 이전으로 맞췄다.
1995년 자정 14분전 미국 등 핵보유국이 핵감축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으면서 '핵무기 없는 시대'에 대한 인류사회의 열망이 식어가던 시기이다.
1998년 자정 9분전 인도와 파키스탄이 잇따라 핵실험을 강행한 때이다. 또한 미국과 소련이 핵감축에 임하지 않고, 15분 이내에 발사될 수 있는 핵미사일 수를 여전히 7천개씩 유지하면서 분침은 다시 5분 앞당겨졌다.
2002년 자정 7분전 9.11 테러 이후 핵테러의 위험성이 증대되고, 미국이 새로운 핵무기 개발 및 MD 구축에 박차를 가하면서 또 다시 2분 당겨졌다.
2007년 자정 5분전 미국과 러시아 등 핵보유국의 핵군축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고 이란이 우라늄 농축 활동을 고수하면서 최후의 심판 시계는 냉전 해체 이후 자정에 가장 가까운 밤 11시 55분을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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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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